인터뷰
박정민 변하게 한 '사바하'...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영화 <사바하>, 정나한 역의 배우 박정민
"제 이름 말고 <사바하>만 검색해서 계속 본다. 이런 적 처음이다.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계속 찾아보니까 감독님이 '지분 있느냐' 물으시더라."
배우 박정민은 지금 <사바하>에 푹 빠져 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라서 애정이 넘친다기 보단, 힘 있고 재미있는 <사바하>란 이야기 자체에 순수한 팬심을 갖고 있었다. 내 연기가 어땠고 사람들이 내 연기를 어떻게 봤을까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사바하>를 어떻게 봤을까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고백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사바하>의 어떤 점이 그를 이토록 매료시켰을까.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에서 미스터리한 정비공 정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을 개봉 당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박정민이 <사바하>에 반한 이유
박정민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볼 때 나한이고 뭐고 안보고 이야기만 봤다"며 그만큼 재밌었다고 털어놓았다. 완전히 몰입해서 추리소설을 읽듯 빠져든 그는 시나리오를 덮으며 "안 하면 백프로 후회하겠네" 싶었고 그렇게 나한 역을 맡았다.
그가 이 대본에 그토록 끌린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박정민은 두 가지를 꼽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이야기의 새로움. "단서를 싹 흩뿌려 놓고 뒤에 가서 싹 모은 다음 인물의 감정을 살짝 보여주고, 그러고 메시지를 툭 던져주고 영화가 끝나는데 그 방식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또 "이야기가 정말 새로웠다"며 "감독님이 다 만드신 이야기인데도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저는 이 영화가 또 좋은 게, 감독님이 어디에 무엇을 숨겨놓았는지 모르는데 조금만 찾아보면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다는 거다. 숫자 6의 의미라든지 까마귀, 동물들이 상징하는 것이라든지 그런 흥미로운 수수께끼들이 너무 많다."
박정민은 자신이 맡은 나한에 대해선 '나약한 아이'라고 표현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나쁜 아빠로부터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고 자기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속이 너무 시끄러운 아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구원해주는 한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한이 "가여웠다"며 연민의 마음도 드러냈다.
제법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박정민에게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처음 경험하게 해준 것이 많아서였다. '박정민' 대신 '사바하'를 검색하게 한 것도 처음이지만, 연출적 마인드로 연기에 임하게 한 것도 처음이다.
"이전 작품까지는 연출적인 마인드로 인물을 대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바하>는 이 신의 역할이 뭔지, 그 신에서 나한이 정확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 연출자적인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편집 리듬, 카메라 앵글 등 감독님과 연출적인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다."
"이정재 선배님 너무 좋아"
이 영화에서 박정민은 박목사 역의 배우 이정재와 함께 주인공이지만, 닿는 신이 적어 두 사람이 주고받은 호흡은 많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그는 깊은 유감을 표했다. "선배님과 오래 호흡할 수 있는 영화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며 "짧게 짧게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원래도 선배님을 좋아했지만 함께 영화를 하며 이정재 선배님에게 반했다. 선배님과 같이 있을 때 말 안하고 있어도 편하다."
이정재의 여유롭고 유쾌한 모습을 사랑하는 그에게,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훗날 박정민이 '선배'가 됐을 땐 어떨지 물었다. 후배들로부터 어떤 선배로 이야기되어지길 바라는지 묻자 박정민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꽤 오래 고민했다.
"제가 존경하고 꿈꿔왔던 선배님들의 필모그래피를 종종 찾아본다. 이 선배님들은 내 나이 때 무엇을 하셨나 찾아보는 그런 버릇이 있다. 그러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참 묵묵히 한국 영화를 위해서 걸어오셨구나, 정말 영화만을 위해서 걸어오셨구나, 길을 닦아놓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제가 영화를 계속 하고 있다면, 그때 후배분들이 저에 대해 하는 판단도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묵묵히 영화 열심히 한 선배."
염세는 나의 원동력
박정민의 지난 영화들을 보면 자신을 혹사시킨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고난도의 클래식 곡들을 연습해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한 것이 특히 그렇다. 그런 방식이 괴롭지 않은지 묻자 그는 "괴롭다. 예전에는 머리 싸매고 제가 저를 공격하면서 '왜 그거밖에 못해' 하던 시절이 길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바하>가 고마운 게, 저를 괴롭히는 버릇은 여전히 있지만 지금은 괴로움 자체가 크게 여겨지지 않는다. 현장에 가서 배우라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원이라고 생각하니까 소통하면서 질문하면서 하게 되더라. 그 과정이 즐거웠다. 예전에는 혼자서 뭔가를 해결하려고 끙끙댔다면 이젠 안 그렇다. <사바하>가 많은 면에서 내게 긍정적인 도움을 줬다."
박정민은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며,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좀 더 이야기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다크한 사람이라서 샤방샤방하진 않지만 예전보다는 더 밝아졌고 기운이 생겼다. 염세적이고 냉소적이었는데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그런데 염세, 그게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족을 못하고 계속 뭔가 불만이 있고 그래서 그런 걸 해소하려면 제가 움직여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니까. 대신에 자기만족이 없으니까 그게 옛날엔 괴로웠다면 요즘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진심 어린 바람대로 <사바하>는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상처 없는 순항 중이다.
기사입력 19.02.22 15:30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