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17. 유대_ 친구가 되어준다면 고독은 버리겠습니다
혼자 있는 게 편하다. 혼자서 밥 먹는 것도 편하고 혼자 영화 보는 것도 편하다. 고독은 내 특기가 돼버렸다. 인문학자들도 철학자들도 인간 내면을 단단하게 해주는 고독을 찬양하고 그것을 맘껏 사랑해도 된다니 뭐 그러려니, 내 특기가 자랑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가끔씩 불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이래도 되나, 혼자를 이렇게나 편안해해도 되는 걸까 하고. 어릴 땐 혼자 있으면 외롭고 친구와 같이 놀고 싶고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이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렸다. 고독이 주는 충만감에 행복해하면서도 너무 개인의 세계로 파고드는 건가 초조하기도 했다.
성장이라고 믿었던 것이 어쩌면 퇴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고독이란 것이 성숙한 가치고 심지어 그것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봤을 땐 확실히 좀 이상한 것일 테다. 고독을 즐기는 아이? 우리 반에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나는 그 애를 좀 걱정했을 것 같다. 내가 말을 걸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신경 쓰일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어떤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넌 혼자 있을 때 친구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는 거 같아."
왜 그 한 마디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건지 희한한 일이다. 그때의 장면이 꽤 선명히 기억난다. 운동장 귀퉁이에 있는 놀이기구 앞에 내가 서 있었는데, 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다가오면서 했던 말이다. 아마 그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서 가까이 올 때 내가 누군가를 찾는 눈빛으로 운동장을 둘러보고 있었나 보다. 그 전에도 여러 번 그랬나 보다.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나도 몰랐던 진짜 내 모습을 누군가가 발견해낸 게 부끄럽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두리번거리던 그때의 내가 조금 그립다. 혼자 밥 먹는 걸 불편해하고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던, 고독에 미숙하던 내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언제부턴가 사랑하게 된 이 고독의 발생지(?)를 추적해보면 내 최근의 불안도 배경이 밝혀질 것이다. 일단, 내가 고독을 즐기게 된 건 자신과 친밀해질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진심으로 좋아서다. 이것이 80%의 배경이다. 여기까진 좋다. 이런 고독은 진짜 괜찮은 고독 아닌가. 하지만 나머지 20%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타인과의 시간에서 불편함을 느껴서 도피하고 싶어 선택한 고독이다.
그 20%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어릴 땐 나와 관계 맺고 지내는 사람이 모두 '친구'였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친구 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 '그냥 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분명 친구사이와 다른 형태의 관계였고 그 관계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 받고 부대끼면서 지쳐갔다.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오해가 생기고 이런저런 갈등이 일어나는 게 피곤하고 귀찮게 여겨졌단 걸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을 피하고 싶어서 나는 '혼자'라는 요령을 터득했다.
얼마 전에 한 간담회를 취재했는데 어떤 배우가 한 말이 마음을 훅 때렸다. 예전에는 자신을 가두고 절제하며 살았지만 아프고 나서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좀 바뀌었다고, 이제는 사람들과 있을 때 좀 더 편하게 자신을 내보이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이런 자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타인과 관계 맺는 걸 어릴 때보다 부담스러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편하게 드러내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여전히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지극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런 내가 기대어 포근해하는 이 고독이란 건 어쩌면 퇴보일지도 모르겠다. 20%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