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미완_ 더 이상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완성하겠어."
-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가사 중
살아가는 가운데 종종 튀어나와서 내 곁을 맴도는 가사다. 어떤 노랫말들은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를 완성하겠다는 노랫말에 이상하게 끌렸던 나는 돌아보면 완성에 다가가고 싶어서 노력하며 살아왔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애썼다.
그런데 이제는 좀 바꿔보고 싶다. 더 이상 나를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하는 건 어떨까?
성장하고 싶다. 이건 지금도 변함없는 바람이다. 태어났을 때의 나보다, 점점 나이 드는 내가 완성에 가까운 인격과 정신을 갖춘 성숙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더 낫게 변해야 하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모습의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성장일까? 이 의문은 노력이라는 것이 정말 긍정적이기만 한 건지도 의심하게 했다.
모자라면 모자란 '이대로의' 삶을 완성으로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 또한 성장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모자란 것을 그 자체로 완성으로 바라본다는 건 '미완'을 받아들인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성숙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나를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 초승달이 있다. 이 초승달은 보름달이 되지 못한 미완성의 달이 아니라 그냥 초승달이다. 그러니 보름달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설령 초승달을 미완의 달로 보더라도 미완인 것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닌가. 나를 돌아보면, 늘 보름달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런 점을 고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이건 내가 부족한 점이고 내 흠이니까 보완해야지, 이런 생각을 항상 갖고 살았다. 성장을 위해 변하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게 괜찮은 인간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젠 초승달로 그냥 살아볼까 싶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느 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보름달이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게 초승달의 임무가 아니라, 초승달이라는 미완을 완성으로 받아들이는 게 초승달의 임무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함이 인간다움이다."
- 알레산드로 멘디니
반실용주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곧장 기분이 좋아진다. 동심이 녹아있는 그의 작품들을 볼 때면 어린이의 세계로 입장한 것처럼 마음이 가볍고 행복해진다. 마치 아무런 노력이나 목적 없이 오직 즐거움만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멘디니는 일부러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기능주의만이 제품 사용자를 배려하는 최선이 아니다. 나는 '불완전하기에 인간다운' 디자인을 추구해왔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이었다.
멘디니가 디자인한 것 중 와인병 오프너 '안나G'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웃는 사람 얼굴에 양 옆의 두 지지대가 마치 사람 팔처럼 생겼다. 마개를 들어 올릴 때 지지대가 올라가면서 기지개를 켜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유쾌하다. 주방은 이 오프너 하나로 활기에 찬다. 하지만 코르크를 부스러뜨리기도 쉽고 쓰기 불편해서 실용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멘디니가 의도한 이런 불완전함과 불편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쓰기에 편리하고 완전한 기능을 갖춘 물건만이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어릴 때는 노력이란 가치를 숭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노력을 한다는 말 아래에 깔린 전제들이 자꾸 눈에 보여서 노력이란 단어가 불편하다. 노력을 한다는 건 내가 무엇인가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고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느껴서 의도적으로 그걸 바꿔야 한다는 전제를 갖는다. 어쩌면 노력하는 건 가짜일지 모른다. 내 것이 아니고 내 것이 될 수 없는 가짜를 노력으로써 '진짜'가 되게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건 영어공부나 기타 연주를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태도에 관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향을 정해두고 그쪽으로 자신을 끌고 가면서 태도나 성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 그런 노력은 나를 더 거짓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 박원, '노력' 가사 중
사랑처럼 노력이란 단어와 애초부터 상충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계획 없이 물 흘러가듯 사는 게 내 타고난 성향이라면, 계획에 맞게 체계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건 스스로를 괴롭히는 노력이다.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려고 애쓰는 것과 비슷하다. 타고난 나의 성향은 어떤 부분도 고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미완의 존재다. 미완인 그대로 이미 완성된 것이다. 우린 어쩌면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 것을 쓸데없이 에너지 소비하며 바꾸려고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내가 타고난 특질을 이상적인 무언가에 맞추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노력이다. 노력해서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건 진짜가 아니다.
"난 뭔가 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선지 자꾸만 뭐든 제대로만 하려고 해요. 내가 무언가에 흠이 있으면 그게 내 약점이 된다고 생각해서."
- 드라마 <눈이 부시게> 2화, 준하(남주혁 분)의 대사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드라마 대사 한 구절을 적은 노트를 내게 보여줬다. 이 대사를 읽고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대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뭐든 제대로 하려고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흠이 있으면 그게 약점인 거 아닌가? 두 단어가 같은 말 아닌가? 하고 잠시 혼란에 빠져서 몇 번을 다시 읽었던 것이다. 그런 후에 알게 됐다. 무언가에 흠이 있어도 그건 약점은 아니란 것을 말이다. 초승달이 초승달인 것처럼 흠은 그냥 흠인 거니까. 나무에 흠처럼 보이는 옹이가 있어도 그건 '옹이 있는 나무'일뿐이지 '흠 있는 나무'가 아니다. 진짜의 나를 숨기고 가짜의 내가 되려는 준하와 내가 비슷한 사람이란 걸 깨닫고 조금 슬펐던 것 같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고, 관대한 인간이 되고 싶고, 따뜻한 인간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보려 한다. 내가 늘 무언가에 얽매인 인간이고, 속 좁은 인간이고, 종종 매정한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이대로 살아도 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미완성의 나라도, 이런 나라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
미완의 나를 바꾸는 성장이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고 끌어안는 성장을 하고 싶다. 어린아이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자신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냥 초승달인 채로 살아가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어쩌면 신은, 이 세상은, 완성의 나보다 미완성의 나를 더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Please look at the imperfect human being God gave you to love once."
- 커트 보니것, <세상이 잠든 동안> 중
** 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