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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y 01. 2020

한 번도 분 적 없는 트럼펫을 불겠습니다  

시도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미국의 어느 재즈바. 무대 위에서 트럼펫을 불던 남자는 자신의 연주를 집중해서 듣던 한 테이블의 꼬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트럼펫 불 줄 아니?" 질문에 꼬마가 대답했다.


"글쎄요. 한 번도 불어본 적이 없어서 제가 불 줄 아는지 못 부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 꼬마가 바로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야, 하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 실화인지 아닌지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나는 꼬마 루이 암스트롱을 상상하면서 머릿속에 이 이야기를 담아두고 있었다.


아이의 대답이 당돌하다.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다면 보통 사람은 "못 분다"고 답하겠지만 꼬마는 "모른다"고 답했다. 자신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스스로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이 꼬마는 언젠가는 트럼펫을 불 것이다. 그때 자기가 그것을 못 분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고, 언젠가는 잘 불 수 있을 거라는 예감 또한 그날 함께 얻게 될 것이다. 꼬마는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가 될 것이다.


안 해봤다고 못하는 건 아니다. 한 번도 안 써봤어도 시를 쓸 수 있고, 한 번도 축구공을 본 적 없어도 슛을 넣을 수 있다. 시도해봐야 아는 거니까. 내 안에 어떤 재능이 있는지 나도 모르니까.


어린이라고 해서 모두 루이 암스트롱처럼 시도에 열려있는 건 아닐 테다.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기억으로 남는다면 도전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니, 살아온 날만큼 더 많은 실패를 쌓아온 어른들은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뭐든 시도해보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깨달음을, 이 역시 경험으로써 쌓아왔기에 우린 도전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어린이처럼 천진한 도전이 아니어도 좋다. 뭐라도 시도할 때 삶이 지루하지 않고 에너지가 생기는 걸 나 또한 체험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뭐든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 지금까지 시도를 많이 하고 살았지만 그것이 대부분 공부와 관련된 것이었다. 컴퓨터 자격증이나 한자 자격증, 한국사 자격증 같은 걸 땄을 때 성취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어서 몸으로 느끼는 기술의 맛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성취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일상에서 쓸 일이 별로 없고 까먹는 것들 말고 기능적인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


보다 체험적이고 육체적인 시도들이 내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줬다. 가령 운전을 처음 배울 때, 핸들감각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을 수 있게 됐을 때 내 안에서 생기는 엔도르핀이 삶에 활력을 줬다.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배울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매일 비슷하고 지루한 삶에 짜릿한 균열이 생겨 그 틈으로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 그 기분을 한 번 만 더 경험할 수 있다면!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정류장에 저 문구가 있었다. 나이키 광고였는데, '너의' 위대함이 아니라 '너라는' 위대함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나의 위대함은 내 일부가 아니라 나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어도 어쩌면 내가 트럼펫을 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것. 그 믿음이 나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일 아닐까. 누군가 내게 “너는 그것을 절대 못할 것”이라고 말해도 이제 그런 말 따위 무시하는 아이처럼 되기를.


어느 날 내가 굴삭기나 지게차를 몰고 나타나도,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도 놀라지 마시기를. 나 역시 당신이 하는 시도와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까지, 그 모든 것을 응원할 테니.


* 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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