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비처럼 쏟아져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어린이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편안하게 받을 줄 안다.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이걸 받으면 갚아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연함이 어린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계속 받게 하고 그들의 삶을 마르지 않게 한다.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 “아닙니다, 넣어두세요” 하고 거절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하며 겸손을 연기하는 아이도 본 적이 없다.
이 우주는 화수분처럼 무한한 곳이라는 믿음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마인드와 반대점에 있는 듯 보인다.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도 된다. 아이가 엄마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엄마는 계속 주고 또 주는 것처럼 우주가 내게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좀 더 살만해지는 것 같다.
기브 앤 테이크의 방정식으로 득실을 셈하는 나의 버릇이, 내게 쏟아져 내리는 행운을 얼마나 많이 튕겨냈을까.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 그저 대범하게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을, 행운의 물방울을 콩알 세듯 하나씩 세면서 받았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현실화되지 못한 감사할 일들이, 나의 운명 한 구석에 퇴물처럼 처박혀 있는 건 아닌지.
남한테 신세 지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은, 돌아보면 성숙하긴 하나 썩 훌륭한 생각은 아닌 듯싶다. 최대한 빚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어른들 심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배려보다는 배척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을 때도 있다. 나도 너한테 피해 안 줄 테니까 너도 내게 피해 주지 말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염치'라는 건 중요하다. 남에게 무언가를 받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인간적이고 염치 있는 행동이며, 사람이 염치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염치없이 굴라는 의미가 아니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행운을 받아들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 속의 행운들을 마땅하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받아들이고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감사는 받아들임의 언어이고, 이 말 외에 다른 말들은 행운을 내쫓는 말들일뿐이다. 자신에게 행운이 쳐들어오면 주소를 잘못 찾아온 택배 보듯 어리둥절하지 말고 덥석 받아도 된다. 당신은 행운을 받을 자격이 있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건 우주의 섭리를 무시하는 일이니.
세상은 내 생각처럼 그렇게 빡빡한 전당포가 아닌지도 모른다. 세상은 내게 행운을 부어줄 때 섬세한 요리사처럼 계량컵을 꺼내 들지 않는다. 엄마 품에 안겨 외출한 아기가 모르는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듯 내게 다가오는 모르는 호의들을 모두 받아도 괜찮은 일이다.
“그리고 그대들 받는 이들이여, 물론 그대들 모두는 받는 이들이지만,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그대들 자신에게나, 주는 이에게나 굴레를 씌우는 일. 그보다는 주는 이와 함께 그의 선물을 날개 삼아 날아오르라. 자신이 진 빚을 지나치게 염려함은 아낌없이 주는 대지를 어머니로 삼고 신을 아버지로 삼은 그의 자비를 의심하는 일이므로.”
- 칼릴 지브란의 저서 <예언자> 중 ‘주는 일에 대하여’
** 위의 내용은 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2019, 웨일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