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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Aug 01. 2020

나는 왜 과정보다 결과를 생각할까




나는 왜
과정보다 결과를 생각할까







"네가 말하는 건 전부 결과잖아. 지금 너는 무언가를 했을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물들에 대해 말하고 있어."


절친이 조곤조곤 나의 뼈를 때렸다. 몇 년 전, 내 고민을 듣고 그 애가 차분하게 던진 말이었다. 따귀 맞은 기분. 나의 허세와 욕심을 꿰뚫는 말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내가 털어놓은 고민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답답하고 곤궁한 이 삶을 좀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였다. 절친은 듣기 좋은 맞장구를 쳐주지 않았다. 대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삶'은 무언가를 해서 얻는 결과물인데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건 이상해 보인다고 말했다.


친구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결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모습을 직시하는 건 불편했지만 똑바로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절대 저런 어른은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좋은 집, 좋은 차가 목적인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한때는 조롱해놓고 그런 삶을 동경하고 있는 이중적인 내가 위선적이게 느껴졌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그걸 말해봐. 그리고 너도 그것에만 일단 집중해봐.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과정에 집중하는 거야. 그러면 네가 원한 부수적인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올지도 모르잖아."


그 애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 요구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예감이 퍼뜩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 그게 뭘까.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과정을 생각해보고, 과정이 탐나는 일을 찾아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시간이 빛나는 일, 그 걸음들 속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일.


과정이 즐거운 일을 찾아서 아이처럼 순수한 태도로 몰두해보고 싶어 졌다. 목표에 집중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난 결과를 목표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만일 내가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면,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식으로 말해왔던 걸 비로소 깨닫게 됐다.


목표는 결과가 아니다. 그러니 내 목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어떤 책을 쓰고 싶다'라는 문장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책을 쓰는 건 목적이자 과정인 일이며, 결과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내게 속하는 일이 아니며, 내 몫의 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은 내가 만들 수 있지만 결과는 내가 손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떤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인터뷰 때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나. 무대에 서는 게 재밌고, 그래서 하루 종일 재밌는 거 같다. 스키를 타러 간다고 했을 때 가는 차 안에서의 시간도 있지 않나. 스키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타러 가는 시간 동안도 즐거운 것처럼 저희도 같은 마음이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아침부터 일어나 머리를 하고 옷을 입는 그런 모든 과정이 즐겁다."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가 가장 큰 보상이라고. 그 보상이 최상의 결과라고. 우리의 시간은 한정돼 있고, 흘러가는 이 시간은 애틋할 정도로 소중한데 그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과정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여운 일일까. 결과의 시간만을 소망하고 결과의 시간만을 내 삶으로 인정한다면 그건 과정이라는 더 긴 시간을 내다 버리는 것 아닐까.


나에겐 과거 한때 'Not Yet'의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정해놓고서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날들. 그때 난 '지금 이 시간은 내 목적지로 가기 위해 견뎌내고 거쳐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빨리 지나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이런 태도로 꽤 오래도록 살았다. 특히 20대 때. 이건 내 진짜 삶이 아니야, 기다려봐. 마음속으로 혼잣말했다. 나는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일한 적도 있었고, 더 멋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이미 나를 지나가버렸다. 후회는 내가 감당할 몫이다.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문이 아직은 닫히지 않은 것 같다. 과정의 충만함이 있는 저 문 안의 세계로 들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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