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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29. 2020

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우가 아니라 떡볶이입니다

욕심





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우가 아니라 떡볶이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사랑한 것이지, 욕망의 대상을 사랑한 것은 아니다.”

- 니체, <도덕의 계보> 중




"아이들이 다락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낮은 천장 때문이래요. 작은 체격에 맞는 공간이라 편안함을 느낀다는 거죠."


한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를 듣고서 나는 궁금해졌다. 그럼 어른들이 큰 집을 선호하는 것은 왜 그런 거지? 어른은 어린이와 반대로 공간이 아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넓으면 넓을수록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존재인 건가? 물론 난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어른에게 집은 삶의 공간이자, 부동산이니까. 누가 공짜로 집을 준다고 하면 아무리 체구가 작아도, 식구 수가 적어도, 살림이 많지 않아도, 아늑한 집을 사랑하는 소박한 취향이라도 나는 큰 평수를 고를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넓을수록 좋은 것이 집인 게지.


아이들은 무언가를 고를 때 어른보다 머리를 덜 굴린다. A와 B 중에 지금 당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선적으로 고를 줄 안다. 떡볶이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접시 두 개를 내밀며 “너 떡볶이 먹을래, 아니면 횡성한우 먹을래?” 묻는다면 아이는 당장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집어 들 것이다. 나였다면? 입만 아프게 할 질문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였다면, “전 지금 떡볶이가 무척 당기지만, 그러나 저는 바보가 아니잖아요?” 하며 횡성한우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재기의 달인이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도 이리저리 재보고 계산하고, 미래까지 당겨 와서 이리저리 예측해본다. 그리고는 지금은 그다지 원하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걸 고른다. 누가 봐도 당연한 선택을, 또한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해야만 현명한 것처럼 생각됐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무시했다. 머리는 공손히 떠받들면서.


내일은 보장돼 있지 않고, 내 마음이 원하는 그것은 오직 오늘에만 있다. 오늘은 이렇게 내 눈앞에 와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일 속에 있는 기쁨을 상상하며 오늘에 들어있는 선물을 외면해버린다. 이게 다 몹쓸 놈의 욕심 때문이다. 마음이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욕심이란 놈이 자꾸 입을 틀어막아서다.


얼마 전에도 욕심 때문에 그날의 선물을 놓친 적이 있다. 카페에 가서 쿠폰을 쓴 이야기다. 나는 가장 비싼 음료를 주문했고 상식적으로 당연했다. 쿠폰으로 비싼 음료를 시키는 건 욕심이 아니다. 그렇지만 좀 찔리는 게, 그때 나는 커피를 무지무지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적립쿠폰으로 커피를 시키는 그런 만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커피는 애초에 선택지 항목에도 못 끼었다. 쿠폰의 유효기간은 그날이 마지막이었고, 나는 바보가 아니기에 아메리카노를 못 먹어 죽는 한이 있어도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당장 느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생각해봤을 때’ 더 좋아 보이는 상식적 행복을 선택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떡볶이를 못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커피를 못 마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부귀영화를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도 이렇게 씁쓸한 기분이었을까. 내가 먹고 싶은 것 대신 스테이크와 자몽 셔벗 블렌디드를 선택했을 때, 나는 과연 행복을 저금한 것일까, 아니면 쓸데없이 지출해버린 걸까. 저금한 거라면 그 돈은 미래에 내가 정말 쓸 수 있는 행복인 걸까. 


이건 진짜 잘 모르겠다. 나는 욕심 버리기... 이거 너무 어려워서 못할 것 같다. 적립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만큼 욕심 없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립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만큼 돈에 연연하지 않는 부자가 되는 게 훨씬 빠른 길처럼 보이니까. 오억 개의 별을 소유하려는 나는, 지금, 아주 진지한 사람이다.


"천만에, 게으름뱅이들을 몽상에 잠기게 하는 금빛 작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지한 사람이야! 나는 몽상에 잠길 시간 따위는 없거든."

"아하! 별들 말이군요!"

"그래, 그거야. 별들."

"오억 개의 별들로 뭘 하는데요?"

"오억 일백육십이만 이천칠백삼십일 개야. 나는 진지해, 나는, 나는 정확하지."

"그러니까 당신은 그 별들로 무엇을 하냐고요?"

"내가 무엇을 하냐고?"

"예."

"아무것도. 나는 그것들을 소유해."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



** 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2019, 웨일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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