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일전에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곡을 쓰는 덕원이라는 멤버에게 "9개월도 아니고 무려 9년 동안 앨범 한 장을 만든 건 너무했지 않느냐, 강산이 1회 변한 세월이다" 하며 오지랖 넓게 추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내게 이리 말했다.
"가사 때문에 9년이 걸렸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콤팩트하게 노랫말을 짜고 싶었다."
하. 나. 마. 나. 한.이라는 다섯 글자가 총알 다섯 방이 되어 정조준으로 날아들었다.
'이건 무언가,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잖아.'
나는 양심의 가책 비슷한 걸 느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종종 그러니까.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글을 채우던 나의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해왔던 이야기들, 가령 '책을 많이 읽읍시다'나 '겸손합시다' 같은 뻔하고 뻔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해왔다.
‘적정 분량을 채워야 해.’
이 의무감이 나를 하나마나의 세계로 몰아간 것이다. 중언부언 중언부언 써놓고 나서 퇴고를 한다. 퇴고 중에 독백을 뱉는다. '글이 뭐가 이렇게 지루하고 축축 늘어지냐...' 그리고는 문장을 빼기도 하고 단어를 빼기도 하며 어떻게든 콤팩트하게 고쳐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퇴고 때 뭘 해보려는 것보다 애초에 해서 안 될 일은 시작을 안 하는 게 나은 법. 최소 200페이지는 넘어야 책이 되지 않겠느냐며 양 채우기에 급급한 마음은 처음부터 가져선 안 될 마음이었다. 이런 조바심 때문에 나는 A-A'-B-B'-C-C'-C'' 같은 겹겹의 엄마손파이 같은 글을 써댔던 것이다.
"거짓말로 괜찮다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울었던 어렸던 날들/ 이제는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
- 브로콜리너마저, '괜찮지 않은 일' 중
이 가사 마지막에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란 문장은, (누군가) 내게 상처 주지 못할 정도로 나 스스로 단단해져야겠다는 다짐이면서 동시에 (내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못하는 제대로 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콤팩트는 단지 간결하고 작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밀도 있고 단단하며 촘촘하게 짜여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내 의도와 다르게 이해할까봐 그게 불안해서 미주알고주알 얘기해대는 내 글과는 결이 다른 듯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쓰는 게 아니라면,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어떤 날은, 점심시간에 회사 팀원들과 카페에 둘러앉았는데 누군가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신박한 화두였다. 새롭지 않은 글이면 아예 쓸 필요가 없다는 의도의 그 말처럼,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이런 글 저런 글이 넘치는 이 세상에 굳이 또 비슷한 글 하나를 내가 보탤 필요가 있는 걸까. 그것은 마치 앞 문장을 부연설명하는 문장을 뒤에다 갖다 붙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다. 뻔한 주제를 뻔한 방식으로 풀어서 뻔한 글을 생산해낼 필요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 하는 이 질문은 찰떡처럼 내게 붙어 글을 쓸 때마다 튀어나왔다.
‘내가 쓰는 이 글 안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있나? 물론 새로운 것을 위한 새로운 것을 쓸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누구나 아는 평범한 얘기를 나만의 시각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풀어내야 할 거야. 넌 지금 그런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은 거니?’
앞으로 하. 나. 마. 나. 한. 이야기를 할 거면 그 시간에 모자란 잠을 더 자기로 나는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