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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20. 2019

낱말들이 팝콘처럼 터질 때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이하 사진 출처_ Unsplash



글을 쓰는 건 레고를 쌓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낱말 하나하나를 얘들끼리 붙여보고 뭔가 이상하면 쟤들끼리 붙여보면서 만들고자 하는 빌딩 하나를 완성한다. 레고 조각이 많이 있다고 근사하고 튼튼한 빌딩을 만드는 건 절대 아니지만, 턱없이 적은 레고 조각으로 제대로 된 빌딩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남길지언정, 모자란 것보다는 넘치는 게 낫다. 분명.


레고 조각을 흔히 '어휘력'이라고 하는데, 그 레고 조각을 잔뜩 가지기 위해 사전을 정독하거나 외우는 사람은 없을 거다. 특별한 왕도가 없단 말. 몸에 사리가 생기듯, 살면서 어휘들이 몸 안에 쌓여갈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글을 쓸 때면 내 몸 안에서 그것들이 툭툭툭 튀어나오는 거다. 이건 비유적 표현이 아니고 리얼이다. 글 쓸 때 나의 경우는, 내 머릿속을 뒤적거려서 낱말을 '꺼내는' 느낌이 아니라, 필요한 낱말이 몸 안에서 운 좋게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로.


팝콘이 터진다. 별빛이 내린다. 샤랄라라라라라...


대학생 때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어서, 그때 내가 만들었던 팝콘들이 퉁퉁퉁 하고 가볍게 튀어오르는 이미지가 내 안에 간직돼 있다. 그 이미지가 생뚱맞게도 글을 쓸 때면 가끔 떠오른다.


나는 어휘력이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운은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글을 쓸 때 어떤 단어들이 필요한 타이밍에 맞춰서 내 안에서 튀어올라와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단어들을 많이 알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재수가 정말 좋았다'는 쪽에 가까운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인데, 팝콘은 옥수수 알갱이 한 컵과 (내 기억으로) 노란빛을 띠는 솔트 한 스푼을 넣어주기만 하면 어느 순간 꽃처럼 활짝활짝 만개한다. 열은 물론 필요하다. 레고가 그랬듯이 옥수수 알이 부족하면 당연히 팝콘도 적게 만들어지는 건 말하면 입 아프니까 말하지 않겠다. 지금 나는 너무 뻔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팝콘 찬스를 쓰고 있는 것이란 건 말하면 민망하니까 말하지 않겠다. 내 안에 어휘들이 많아야지, 그것들이 필요할 때 눈치 있게 툭툭 튀어올라와준다는 건, 정말이지 말해서 무엇할까.


내 안에서 어휘들은 먼지처럼 쌓여갈 뿐이다. 


사전도 소용없고, 다만 살면서 그때그때 마주치는 활자들이 눈으로 들어와 내 몸 안에서 먼지로 쌓여야만 쌓일 뿐이다. 먼지를 손으로 허공에서 끌어모아 책상 위에 쌓아놓을 수 없듯이, 단어들도 자연스럽게 쌓여야만 쌓인다. 오랜 열이 팝콘꽃을 터뜨리듯이. 내 안의 낱말들이 있다면, 그건 오래 쌓여 오래 달궈진 것들이다.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이.


책을 많이 읽어요 우리, 뭐 그런 누구나 다 알고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이 좋아지고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요, 뭐 이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지금까지 레고와 팝콘과 먼지 등을 동원한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실제로, 팝콘이 제때제때 몸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면 책을 꺼내 읽는다. 옥수수를 모으자, 옥수수를 모으자, 으쌰 으쌰. 바닥난 재료를 그렇게 좀 수급하고 나면 단어들이 하나씩 툭툭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면, 쓸 수 있다. 


단어가 모여서 글이 되고, 나는 글을 잘 쓰고 싶고, 단어는 사랑이니까...(응?)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단어 제일 많이 모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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