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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22. 2019

작가는 답을 던져주는 사람이 아냐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출처_ Unsplash



선물이 주는 설렘이란 건 포장에서 비롯되어 내게로 다가온다. 나는 저 어여쁜 포장 너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무언가가 분명히 들어는 있고,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고. 곧 나는 손을 뻗어 포장지를 풀어볼 것이다. 다음은, 내용물의 정체를 알게 될 거고. 그러니 이렇게나 설레는 거다. 선물이 포장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가려진 것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널 좋아해"처럼 포장을 생략한 단도직입보다는 "난 너의 미소를 볼 때가 하루 중 가장 기쁜 시간이야" 같은(사지가 오그라들지만 어쨌든 조금은 가리어진) 고백이 몇 배는 더 설렌다. 그건, 좋아하는 마음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이야기를 머금고 있다는 이유로 그 말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만큼 설렐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여지가 있단 거다. 심지어 '내 미소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 그럴까' 하고 속상해하는 것 마저도 듣는 이의 마음인 것을.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그러니, 정성스럽게 포장된 글은 매력적이다. 


포장이란 말이 가식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그런 관용적인 뜻 말고 진짜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다가 상상해봐달라. 같은 물건이라도 고급스러운 포장지나 양장박스에 담아주면 더 기분 좋기 마련인 것을.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선물선물 거리느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서론이 기차보다 길었음에 사과드리오며 본론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겠다.


작가는 답을 던져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딱, 거기까지만 해야 한다, 작가는. 독자로서도 나는 그런 글을 좋아한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하고 작가가 답을 다 말해버리는 글보다, 이건... 음... 저건... 음... 하고 쩜쩜쩜의 무한세계를 열어두는 글이 좋다. 글은 수학이 아니니까. 사람 마음이 수학이 아닌 것처럼.


나의 경우에 모든 글은 수수께끼일 때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인물의 성격과, 그 인물의 행동 또는 말을 통해서 주제를 감춰놓은 소설류의 글을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수수께끼나 스무고개 같은 걸 되게 좋아해서 밥먹듯이 했는데 '정답이 뭔지 정말 모르겠는 게' 그 게임의 핵심이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모르겠는 걸 나는 즐겼던 거다. 누가 힌트랍시고 훅- 선명한 무언가를 던져주면 그런 나쁜 사람이랑은 상종을 하지 않았다. 계속 모를수록, 계속 설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물이 포장지에 싸여 있듯 물음표로 싸여있어야 가치 있다.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을 들게 하는 글을 나는 좋아하는데,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작가의 집필 의도라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미리 헤아릴 수 없다'고 직접 답을 던져버리는 것보다 그런 사례의 '이야기'만 들려주는 게 더 수수께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럴 때 독자는 포장 안의 물건을 상상하고 썸남썸녀의 한 마디를 해석하는 마음으로 무한의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다.  


보물찾기가 괜히 보물찾기가 아니다. 숨겨져 있는 것을 힘들게 제 손으로 찾아내면, 그게 보물이다. 거저 주어진 것들은 손 안에도, 마음 안에도 귀히 남아있질 못한다. 글이라고 다를까. 소풍 간 꼬마가 나뭇가지를 헤집듯이 독서하는 뇌 속을 헤집어버리게 만드는 무언가만이 그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 것이다.


수줍은 듯 숨어있는 것들은 그 안의 것들이 이토록 무궁무진해서, 매혹적이다. 안개 너머에 있는 보일 듯 말듯한 그 사람도 어쩐지 더 분위기 있어 보이고, 아리송다리송 모호한 썸남썸녀의 한 마디도 천만 개의 뜻풀이를 달고 있어서 마음을 이토록 달짝지근하게 한다.


그러니, 작가는 선생이 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거 맞춰보세용~ 하고 무언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좋은 작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독자는 제 발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반드시 얻을 것이다. 성장할 거고, 자기 자신과 만날 것이다. 


에세이도 결국 소설처럼 '메시지'를 토해버리는 게 아닌 '나의 이야기'를 넌지시 건네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런데 너는 어때? 하고.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인가?'하고 1번부터 5번까지 동그라미에 둘러싸인 번호들을 늘어놓는 글이 아니라. 모든 에세이와 소설은 어떻게든 수수께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에세이 류의 글을 쓸 때 그래서 내가 항상 질문하는 건 이런 거다.


어디까지 보이게 드러내야 하고, 어디까지 안 보이게 감춰야 하지? 


그때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가장 중요한 것일수록 드러내기보단 감춰야 한다는 것이다. 비싸고 귀한 선물일수록 포장까지 신경 쓰는 것처럼. 아무튼 나는 그렇다. 여기까지가 내가 선호하는 글쓰기에 관한 썰이다. 사람마다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르니 나의 말은 흘려들어주셔도 좋겠다. 당신의 스타일대로! 세상의 모든 '쓰는 사람'님들... 응원합니다. 파이팅! (마지막 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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