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나는 아이돌을 좋아한다. 음악담당 기자여서 그런 게 아니고 원래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춤을 잘 추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댄서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선을 사랑해왔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가 내 눈에는 현대무용이나 고전발레처럼 순수예술과 다름이 없어 보이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들 역시 나중에 검색해보면 결국 다 팀의 메인댄서였다.
이런 취향은, 가수 취재를 하면서 퍼포먼스 무대를 자주 보게 되며 더 구체적인 선호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나의 경우 춤을 물 흐르듯 부드럽게 추는 댄서를 좋아한다. 내게 있어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이란 부드럽게 추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고 흐느적거리는 걸 말하는 건 아니고. 물도 이따금은 격랑을 만들듯이 때론 강렬하게, 동작의 강약을 물처럼 유연하게 이어서 표현하는 그런 춤 말이다.
그런 댄서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드러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부드럽다는 건 어쩌면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요즘따라 더욱 자주 드는 것이다. 그리고 부드럽게 흐르는 글에 대해서도 연결해서 마음이 미친다. 영화 <와호장룡>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 <와호장룡>의 리무바이(주윤발)가 휘어진 대나무 위에 가볍게 올라서서 수련(양자경)에게 하는 말
칼군무란 걸 춰도 명백한 차이가 난다. 아이돌 멤버들이 똑같은 동작을 똑같은 타이밍에 추지만, 내 시선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처럼 움직이는 한 멤버에게 다가가 고정돼 버린다. 얼마 전 한 여자아이돌 그룹의 쇼케이스에 갔다가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 멤버를 보고서 그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냥 파워풀하기만 다른 멤버 몇몇과는 완연히 달랐다. 4분 동안 그의 몸이 만들어내는 동작 하나하나는 모난 곳 하나 없이 곡선으로 한 번에 연결됐다. 마치 일필휘지의 글 같았다.
아, 나도 물처럼 써야지, 물처럼 써야지. 그러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혼잣말하는 요즘이다. 한 번에 부드럽게 쑥 읽히면서 곡선처럼 황홀한 선을 가진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주윤발의 하늘거리는 검술처럼, 그 메인댄서의 힘 있으면서도 부드럽기 이를 데 없는 춤처럼.
세상의 모든 부드러운 것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치즈케이크, 카페라떼, 찹쌀떡, 물만두, 계란찜, 콘 위의 아이스크림, 아이의 분유...(왜 다 먹는 것들뿐?) 무려 3~4년 전에 마셨던 녹차라떼의 맛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데 그 이유가 바로 '부드러움' 때문이다. 삼청동 골목의 한 언덕에 있는 카페에서 마신 그 차가운 녹차라떼! 이 세상 부드러움이 아닌 처음 만나는 촉감이 내 혀를 순식간에 휘둘렀다. 실크로드를 건너온 최상급 비단 같았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왜 이렇게 나오는 데 오래 걸리느냐며 구시렁댔던 나는, 진심을 다해 나의 경솔함을 반성하고 반성했다. 이런 부드러움이라면 2시간이 걸려도 부처님 같은 미소로 인자하게 기다릴 것이다.
춤이든 검술이든 녹차라떼든 옷감이든 목소리든 글이든 마음결이든 그 무엇이든... '부드러움'은 끝내 다다라야 할 종착역이라고 난 생각한다. 부드러움은 가장 성숙한 상태며, 가장 어려운 단계란 것은 파도가 쉬지 않는 일처럼 자명하고 멋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