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밀실과 광장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에세이를 쓸 때마다 마주치는 갈림길. 그 앞에서 매번 내 다리는 갈피를 못 잡고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를 춘다. 어느 누구도 내게 '깊이에의 강요' 혹은 '솔직에의 강요'를 한 적은 없다만 왠지 에세이를 쓸 때 솔직하지 않으면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의롭지 못한 것 같아서 광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금은 어설픈 발걸음.
나란 사람은 타고난 밀실형 인간이다. 가슴속에 적당한 비밀이 쌓여 있을 때 마음 편하다. 비밀이어야 할 것이 비밀이 아니게 될 때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다. 현직 집순이인 내겐 뚀료룡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명랑한 소리이자 자유와 평화의 멜로디다. 이토록 밀폐된 인간이건만, 희한하게도 글을 쓸 때 나는 제법 솔직해진다. 내가 작가적 소질이 다분한 덕인가! 솔직함이라는 재능이 펜만 들면 저절로 고개를 드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랫동안 난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날들 끝에, 내가 머무는 이곳 광장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광장이 넓어질수록 밀실을 향한 그리움이 커졌다. 나는 왜 솔직해야만 하는 걸까. 처음엔 질문 같지도 않던 이 질문은 슬그머니 표면으로 떠올랐다. 비로소 솔직함의 아이러니에 빠진 내가 보였다. 아이러니의 형태는 대략 아래와 같다.
1.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글이 솔직한 글이다
2. 있는 그대로의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안 솔직함)
모순이다. 좋은 에세이라면, 응당 작가의 이야기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겨야만 한다는 이 생각은...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에 이르자 그동안 내 책을 읽은 주변인에게 내가 해왔던 해명의 말들이 떠올랐다. 넌 가진 것도 많고 이룬 것도 많은데 왜 자신을 낮춰 생각하는 거냐는 그들의 질문. 이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 책을 보고서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 속의 나는 뭐랄까, 좀 과장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내 안의 어떤 특질들을 극대화해서 표현하거든. 이를테면 캐리커쳐 같은 거지. 조금 외로울 때 나는 그 외로움이란 감정을 과장해서 글을 쓰지. 그러니 많이 힘드냐고 묻지 않아도 돼.
아이러니의 골짜기여, 너는 얼마나 더 깊어지려 하는가. 외로움을 부풀려 쓰는 이유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니까 그러면 난 솔직한 글쓰기를 한 건가? 안 솔직한 글쓰기를 한 건가? 기막힌 아이러니다. 그런데 맙소사... 방금 또 그랬다. 글을 쓸 때 내가 무언가를 늘 부풀려 쓰는 건 아니다. 안 그럴 때도 많다. 그런데도 방금 나는 '과장'에 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치 모든 글을 부풀려 쓰는 것처럼 말해버렸다. 이것이 나만의 현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가 읽는 에세이는 어디까지가 진실인 걸까. 작가의 정의감을, 선함을, 용기를, 추악함을, 비겁함을 우리는 표현된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미안하지만 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글에 법칙이 어딨나. 솔직해야 한다는 법칙 따위 애초에 없었다.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은 정답이 아니다. 때론 거짓말이 필요한 게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글쓰기도 삶을 닮아 무언가를 감추기도 하고 어떤 건 과장하기도 하며 또 무언가는 비꼬아 반대로 말하기도 하고. 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정색하고 다큐멘터리를 찍듯 쓴 글은 내게 지루하기 짝이 없다. 전하고자 하는 고갱이가 손상 없이 잘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 글이 세미픽션처럼 쓰이더라도 솔직한 글이다. 이 또한 아이러니지만 그런 에세이가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과장하거나 은폐하여 쓴 글은 진정 안 솔직한 글일까? 나쁜 글일까? 이 질문과 함께 나는 밀실로 발걸음을 돌린다. 앞으로 억지로 광장에 나가진 않을 생각이다. 나만의 밀실에서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거짓인, 삶의 무늬를 고스란히 옮긴 '진짜' 있는 그대로의 글을 쓰는 것. 이것이 내가 원하는 글쓰기 방식인 것 같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