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적 글쓰기와 여성적 글쓰기의 차이점이 궁금하신가요? 아니면 공통점? 혹은, 남성적인 글을 쓰고 싶은가요? 아니면 여성적인 글? 이러한 의도로 이 글뭉치를 열어본 이라면 곧 반전의 기쁨(혹은 슬픔)을 맛보게 될 겁니다. 오늘은 특별히 결론부터 말하건대, 남성적 글쓰기와 여성적 글쓰기는 둘 다 No, No입니다. 양쪽 다 지양해야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스스로 처음 생각한 건 아닙니다. 오래전에 은희경 소설가님의 북토크에 간 적 있는데 그때 작가님이 말씀하셨어요. 독자가 작가의 정보를 모른 채 어떤 글을 읽었을 때 글쓴이의 성별이 무엇인지, 나이가 얼마쯤 됐는지 알아챈다면 절대 좋은 글이라 말할 수 없다고요. 아, 이건 보나 마나 50대 남성이 쓴 거네. 아, 이건 20대 여성의 글이 확실해. 틀리면 너한테 당장 오만 원 준다. 이런 말이 독자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은희경 작가님의 얘기를 듣고 그때 저는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한쪽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죠. 작가님의 소설 속 주인공이 남자일 때가 더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일종의 거리두기죠. 작가님은 여자니까요. 등장인물과 작가가 성별, 나이, 사는 곳, 직업까지 똑같다고 생각해봐요. 그건 백 번 양보해서 '자전적 소설'이며, 양보 없이 말하자면 일기나 에세이에 머물 뿐이죠. '거리두기'는 소설쓰기에서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잠깐. 소설이 그렇다는 거고, 그럼 에세이는 다를 수도 있겠네요? 라고 물으신다면 독자님의 예리함에 박수 쳐 드려 마지않습니다. 맞습니다.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푸는 게 에세이니까요. 에세이에는 성별과 나이 등이 드러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이 에세이가 여성의 글인지, 남성의 글인지 독자가 모를 정도로 양성적으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정보는 드러난다 하더라도 글 전반에서 풍기는 분위기, 문체, 스타일은 한쪽 성별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띠는 게 좋은 글 아닐까요. 책날개에 있는 작가 사진 좀 봐봐, 이 책 여자가 쓴 건 줄 알고 읽었는데 다 읽고 우연히 날개를 열어봤더니 남성 작가가 쓴 글이었지 뭐야! 이건 작가를 향한 최고의 칭찬입니다. 혹은, 맙소사 작가 사진 좀 봐봐.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가 쓴 글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보니 60대 작가의 글이었어! 이 역시도 작가를 향한 인정의 한 마디겠죠. 저는 특히나 '문체'에서 느껴지는 성별이 실제의 성과 반대되는 인상을 줄 때 그 글에 매력을 느끼는데, 사실 이보다 더 나아간 최고의 케이스는 앞서 말했듯 '양성적' 글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중략)... 의식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쓰인 것은 필연적으로 살아남지 못합니다...(중략)...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반대되는 성들이 결합하여 신방에 들어야 하지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
며칠 전에 책을 읽다가 위의 문단에서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얘기에 저는 도저히 나머지 한쪽 무릎을 안 치고 못 배기겠더군요. 울프 작가님의 대표작 <자기만의 방>이 여성을 옹호하고 여성성을 예찬하는 작품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양성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이 태도는 삶 전반에서 같은 패턴으로 반복됩니다.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인 사람이 가장 균형 잡힌 영혼이라는 그의 말을 보세요! 양성적인 글을 쓰겠단 저의 열망은 더욱 타올랐지요.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
"성을 의식하도록 만든 모든 사람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중략)... 우리는 셰익스피어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셰익스피어의 마음은 양성적이었으니까요. 키츠와 스턴, 쿠퍼, 램, 콜리지도 그러했습니다. 아마도 셸리는 무성이었을 겁니다. 밀턴과 벤 존슨은 내면에 남성적인 기질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지요. 워즈워스와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프루스트가 전적으로 양성적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여성적 마음이 조금 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해온 독서의 형태를 드디어 알아보게 됐습니다. 헤밍웨이의 글은 잘 안 읽히는데 셰익스피어나 프루스트의 글은 자연스럽게 읽히는 이유를 알게 된 거죠.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직선적이고 힘 있는 글에 끌리는 마음은 어쩌면 본성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