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되니까..."
평범함 꿈꾸던 모범생의 위험한 발상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 오지수가 범죄에 빠진 이유
범죄는 어떻게 하여 탄생하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은 내게 이 질문을 던지게 했다.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지만, <인간수업>의 오지수(김동희 분)를 보고 내가 얻은 답은 자기연민과 맹목성의 씨앗에서 범죄가 싹튼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10화, 서민희(정다빈 분)와의 계단 신에서 지수는 민희에게 잘못했다고 처절하게 사과하면서 말한다. 나는 그냥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도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더는 바라는 것도 없고 평범하게 그렇게 사는 게 꿈인데 나는 그게 안 되니까, 그래서 그랬다고 말한다.
'나는 그게 안 되니까'라는 이 말 한마디가 거대한 범죄의 씨앗의 눈이었다. 고등학생이지만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스스로 등록금과 학원비, 교재비, 생활비, 집세를 다 내야 하는 지수는 자신을 둘러싼 이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판단한다. 다른 친구들과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러므로 자신이 제3의 방법으로 돈을 버는 건 범죄라기보다는 공평해지기 위한 하나의 어쩔 수 없는 행위라고 그는 생각하는 듯하다.
배규리(박주현 분)와 엮이기 전까지 지수는 학업성적 1등을 놓치지 않는 최상위권 학생이었다. 지수의 목표는 서울대다. 성매매 중간다리 역할을 해서 번 돈으로 학원도 다니고 '남들처럼' 공부해서 서울대를 꿈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또 하나의 휴대폰으로 이뤄지는 그 일을 할 때만 빼면.
지수를 맹비난할 수 없는 이유
다른 이들보다 불우한 환경에 처했다는 지수의 자기연민은 범죄를 스스로 정당화하게끔 하고, 서울대에 가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겠다는 지수의 맹목성은 점점 깊은 범죄의 소굴로 빠지게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란 소설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살인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할멈은 이 사회에서 타인에게 피해만 주는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니까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죄의식 없이 할멈을 죽인다. 자신이 한 행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확신과,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 이후에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 맹목적인 환각 때문이다.
하지만 지수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고 할 순 없다. 그는 사회에 속한 개인, 그것도 아직 판단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않은 청소년이라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대에 입학할 만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 학교에서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해선 안 되는 이 교육환경의 현실도 이 범죄의 공범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환경을, 이런 사회를 만든 건 기성세대다. 어른들이 <인간수업>을 보고 청소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어른들이 지수의 행동을 보고 비난보단 미안함을 더 크게 느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지수가 느낀 불공평한 출발선을 만든 건 지수와 같은 청소년들이 아니다.
지수가 부모님으로부터 방치되지 않았다면, 지수가 '이래야 공평하다'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다면, 지수가 맹목적으로 일류대를 꿈꾸지 않았다면 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소라게의 소라처럼 지수를 둘러싸고 있는 그 환경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억울해도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인간의 양심에 따라 지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했다는 것이다.
지수는 자신의 죄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이 사회가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지수 본인을 위해서. 지수의 인간수업은 죄 뒤의 벌이 이어져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죄와 벌>과 마찬가지로 벌 뒤의 사랑이 이어져야 진정한 구원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수업은 어른들도 꼭 같이 받아야 하는 수업이란 걸 다시 한번 말하는 바다. 맹목적으로 미쳐 달려들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이 사회를 만든 건 우리 모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