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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r 06. 2020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가 삶을 새로이 하는 방식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가 삶을 새로이 하는 방식







누군가 “난 성공할 거야”, “내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야”라고 말할 때 그 성공이라는 단어에서 어딘지 거북함을 느끼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향하는 목적지는 ‘사람’에서 멀어져 점점 ‘실리’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이란 두 글자에서 달달함이 아닌 뭔지 모를 쓴맛을 감지하는 건, 그러니 사실 개개인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돈이 최고인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잘못했다. 


그러나 그 쓴맛을 쓴맛으로만 끝까지 머금고 살아가는 건 개인의 잘못이다. 혀가 있는 한 쓴맛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단맛이 나는 요리로 바꾸는 건 자신의 ‘선택’이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박서준 분)가 하는 일은, 겉으로 보면 장사고 복수지만 안을 보면 자신의 소신으로 성공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돈을 향하는 실리가 아니라, 사람을 향하는 실리. 그리하여 쓰디씀이 아닌 달콤한 풍미를 내는 진정한 성공을 ‘새로이’ 만들어가는 일.


“아빠 목숨 값이야. 더 의미가 있어야 해.” 


<이태원 클라쓰>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대사다. 남들이 보기엔 중졸에, 전과자에, 억울하게 아빠를 잃은 불쌍하고 가망 없는 밑바닥 인생 박새로이. 그는 어떻게 그리 단단할 수 있을까. 그 저력은 뭘까. 박새로이 자신은 그게 ‘내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소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근본의 이유가 있어 보였다. 바로 ‘의미’다. 


박새로이가 죽은 아빠(손현주 분)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방식은 그 죽음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빠의 사망보험금을, 가게를 개업하는 데 당장 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그 돈을 더 의미 있게 만들려고 애쓴다. 자신의 적인 장가의 주식이 폭락했을 때 사망보험금을 장가에 투자했고, 자금의 몸집을 불려서 후에 장가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 아빠의 목숨 값은 아들 덕분에 그 의미가, 그 가치가 높아졌다.   



새로이에게 장사가 일차원적인 이익창출의 도구가 아니고, 직원이 그저 가게에 필요한 일손들이 아닌 것처럼, 장가를 향한 ‘복수’야말로 단순히 분노한 마음을 풀어줄 화풀이가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이에게 복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행위기 때문에. 장가 회장 장대희의 사업을 넘어서고 그의 무릎을 꿇게 하겠다는 복수의 목적지에는 소신과 선함, 사람을 중시하는 진정한 성공이 있었다. 그게 새로이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다. 부조리한 현실의 사회는 물론이고, 오염되고 타락하기 쉬운 감옥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도 자신을 고고하게 지켜낼 수 있는 새로이의 힘도 여기서부터 나왔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 ‘한 번들’이 모여서 사람은 변하는 거야.”


장근원(안보현 분)에게 한 번만 도움을 받고 금전적 손해를 피하라는 조이서(김다미 분)의 말에 새로이가 한 대답이다. 그 ‘한 번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모으며 살고 있을까. 나는 그래서 얼마나 많이 변하는 중일까. 새로이의 이 따끔한 한 마디는, 새로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큰 사람인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새로이가 인내심 있게 15년짜리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휘둘리지 않는 소신을 행동으로 옮겨내는 사람이어서 그는 큰 사람인 것이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났어도 원하는 건 많아서요. 가난해서, 못 배워서, 범죄자여서 안 된다... 그렇게 미리 정해놓고 하면 뭐하겠어요. 해보고 판단해야지.”


감옥에서 새로이가 최승권(류경수 분)에게 한 말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원하고, 원하는 그것을 더디더라도 끝내 확실하게 이뤄내는 건 빛나도록 멋진 일이다. 하지만 더 멋진 건,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정직함과 사회의 법, 그리고 삶의 의미를 수호하는 태도에 있다. 이것이 박새로이가 쓴밤을 단밤으로 만드는 방식이고, 삶을 새로이 하는 방식이며, 억압을 자유로 바꾸는 방식이다. 그것은 보다 고귀한 ‘의미’를 향한 그의 내면의 성찰에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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