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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25. 2020

고문영의 '이 말'에 문강태가 변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리뷰





'강태' 김수현의
예상치 못한 고백에 놀라다





[TV 리뷰]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사랑을 모르는 동화작가 고문영(서예지 분)과 버거운 삶의 무게로 사랑을 거부하는 정신 병동 보호사 문강태(김수현 분)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그린 <사이코지만 괜찮아>. 스토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상처의 치유' 과정이 무르익으며 주제도 선명해지고 있다.  



위선자와 빈깡통의 만남. 위선자는 문강태(김수현 분)고, 빈깡통은 고문영(서예지 분)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려준 건 서로였다.


아마도 그래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게 아닐까. 내가 위선자라는 걸, 내가 빈깡통이란 걸 아는 유일한 사람. 내 진짜 모습, 비겁하고 추악하고 우습고 나약한 내 진짜 모습을 꿰뚫어 보는, 세상에서 단 한 명인 사람이어서. 나를 정확하게 뚫어본다는 게 아프기는 하지만 진짜 나를 쳐다봐줄 수 있기에 보듬어줄 수도 있는 한 사람이기에 두 주인공은 상대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점점 길들여진다.


문강태는 자폐를 지닌 형을 미워한 자기 자신에게 시달리고 있고, 고문영은 엄마의 그림자에 시달리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렇듯 두 사람도 정상이 아닌데, 서로 점점 가까워지며 상대의 베베 꼬인 매듭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스스로는 끝내 풀지 못했던 매듭을 상대가 풀어줄 수 있는 건, 상대의 방법이 그 매듭을 푸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문영의 직선적이고 단순한 정공법은 뭐든 복잡하게 대하는 강태의 매듭을 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정작 강태는 갖고 있지 못한 방법이었다.


문상태(오정세 분)가 오래도록 자기 마음에 품고 있던 "내 동생 강태가 나를 죽이려 했다"는 버거운 사실을 강태의 병원에서 시원하게 외친 날, 강태는 무너져버린다. 자신이 감추려 했던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대로 드러나버렸고, 악마 같은 자기 모습을 완전히 들켜버린 것에 대단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상태 형이 그걸 알고 있었고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넋이 나가서 도망치는 강태에게 문영은 "너는 죄가 없어"라고 외친다. 덧붙여 "넌 비겁했지만 독하진 못했어. 결국 돌아와서 형을 구했잖아"라고 말한다. 문영의 말에 강태는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 그 생각으로 도망쳤다"고 화가 난 듯 털어놓으며 문영의 말을 부인하는데, 그렇지만 "너는 죄가 없다"는 문영의 말이 강태에게 위안과 치유가 되지 않은 건 분명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강태에겐 간절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도 문영처럼 거짓말이란 걸 못하고 위선과 거리가 먼 사람이 해주는 말이기에 큰 치유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문영은 "넌 형을 죽이려 한 게 아니잖아"라고 거짓으로 위로하려 하는 대신에 "(순간적으로 죽이려 한 건 맞지만) 결과적으로는 돌아와서 형을 구했잖아"라는 '팩트'에 근거한 얘기를 던지는데, 이 말이 자신과 타인을 계속해서 속이려 했던 '위선자' 강태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결정적 처방전이 된다.


집에 돌아가 형 곁으로 다가가는 강태. 형은 옷장 안으로 도망친다. 강태는 형에게 말한다. "이제 좀 용서해주라. 내가 잘못했어." 그러자 상태는 강태에게 "뭘? 뭘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라고 정말 궁금한 듯이 차분하게 묻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강태는 결국 다음처럼 대답한다.



"형이 물에 빠졌을 때 도망간 거. 형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못된 말 한 거. 나한테도 평범한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상상한 것. 그냥 다 내가 잘 못했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사실 나는 강태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이 대사에 적잖이 놀랐다. 자기가 형을 죽이려 했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듯 보이는 강태였기에,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위선자가 되어 자신을 속이려 애쓰던 강태였기에 이렇게 다 까발리듯 말할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위의 대사를 듣고 강태가 달라졌구나, 문영이 덕에 매듭의 상당수를 풀어냈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태는 더 이상 위선을 떨지 않았다. 형이 물에 빠졌을 때 자기가 도망갔다는 걸 솔직하게 말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 안 하면 형은 몰랐을 수도 있는) 나에게도 평범한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상상한 이야기까지 고백한다.


이 장면을 보고 사과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용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를 배웠다. 강태처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속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말해야 하는구나, 그게 진정한 사과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옷장에서 나와 강태를 안아주며 "울지마라" 말하는 상태를 보면서 용서는 저렇게 모든 걸 보듬듯이, 상대의 죄를 보듬어 안으면서 해야 진정한 용서구나 란 걸 알았다.


두 형제는 이제 더 행복해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서로에게 감추었던 것,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벽을 망치로 부쉈기 때문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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