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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y 05. 2021

오늘은 달걀노른자를 터뜨려보겠습니다




[일탈]
오늘은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를 터뜨려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서커스 구경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커다란 코끼리들을 묶고 있는 밧줄이 생각보다 가늘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놀란 건, 가는 밧줄을 단번에 끊을 수 있는 코끼리들이 전신이 묶인 것처럼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 조경란,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중


김치찌개 만드는 순서가 어떻게 됐더라? 김치를 먼저 볶았던가? 돼지고기는 언제 넣었더라? 마늘은 넣었던가, 안 넣었던가? 넣었다면 다 끓여갈 때쯤 넣었던가? 기억나는 대로 대충 만들어도 될 것을 나는 굳이 김치찌개 레시피를 정확히 기억하려고 애쓴다. 레시피에 맞게 끓여야만 김치찌개가가 되는 줄 알고, 그렇게 안 하면 김치찌개가 된장찌개가 되는 줄 알고. 


언젠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데 한 가수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이런 말을 했다. 


“요리는 예술이거든요. 자기 마음대로 창조하면 돼요. 정해진 레시피 같은 거 지킬 필요 없어요. 저는 제 마음대로 하거든요.”


하긴, 레시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요리했을 때 초래하는 결과라 해봤자... 맛없어서 쓰레기통에 죄다 버리는 정도? 뭐 이 정도는 자유로움과 바꿀 만하지 않나. 그의 요리는 비주얼부터가 난해한 것이 현대미술 같았다.


나는 예술에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일상에서 일정한 길을 만들어놓고 거기로만 다니려는 사람이었다. 나의 스타일대로 살기보다는, 누군가의 스타일을 생각 없이 따라 하며 살고 있었다. 계란 프라이를 굽는 스타일도, 기름 있는 음식을 하고 나서 그걸 처리하는 방식도, 재활용 분리수거 방식도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부터 집에서 봐온 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부모님의 라이프스타일을 생각 없이 따라 하며 살고 있었다. 


예전엔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게 엄마의 계란 프라이였으니 그렇게 해야지만 제대로 된 계란 프라이를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부모님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고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내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왜 내 인생인데 내 방식이 없는 거지? 그러다 어느 날 <나 혼자 산다>라는 TV 예능을 보고 이것 하나를 깊이 느꼈다. 


'다들 제 멋대로 사는구나!' 


사람마다 사는 방식도, 집의 분위기도 다 달랐다. 집을 보면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나의 공간에는 나의 개성이 묻어나야 마땅한 일 아닐까. TV 속 무지개 회원들의 집은 ‘누가 봐도 그 사람 집이네’ 할 만큼 그 주인을 닮아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생각했다. 저런 삶도 있구나. 저렇게 살아봐도 괜찮겠구나.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 르네 마그리트


이 말처럼 세상은 도전의 장이고,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새 것을 만들어가는 도전은 사실 별 게 아닌지도 모른다. 평생 안 터트리고 굽던 계란의 노른자를 한번 깨트려보는 그런 거. 일탈이 도전이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기존의 일정한 방식을 오래 지속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것만이 옳다고 믿게 되지만 어쩌면 그건 그냥 ‘익숙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아닐까. 삶의 방식, 라이프스타일이란 건 정답과 오답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빛의 스펙트럼처럼 넓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지니는 것이므로. 우리가 아이였을 땐, 그 스펙트럼의 경계를 주저함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지 않았나.


하루 하나씩, 무엇이든 작은 일탈을 하고서 그 시도가 내게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는 걸 지켜보는 건 꽤 설레는 일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세계도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면 그에 따라서 세계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것이고 더욱 커질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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