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화신 Oct 31. 2021

후회하더라도 내가 선택하겠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삶이 행복이다







햇빛이 기가 막히는 날에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고 싶다. 건물 안에 갇혀 있는 날이면 커피가 당기듯 햇빛이 당긴다.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컴퓨터 앞에 있다가도 밖에 나가 가르마 사이로 햇빛을 좀 쬐어주면 축축하던 기분이 보송보송해진다. 그러면 다시 건물 안에 갇히러(?) 가는 발걸음마저 가벼워지는 것이다. 


회사원들의 점심시간은 햇볕이 가장 좋은 시간과 맞물린다. 마치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과 벚꽃 만개일이 1일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는 것처럼. 점심시간 1시간은 만원 식당에서 빨리 먹기 대결하듯 밥을 먹고 커피를 홀짝이기에 턱없이 짧다. 햇볕 좋은 날이면 어쩐 일인지 시간은 더 쏜살같아서 오전 내내 노동으로 땀 맺힌 정수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응달로 돌아가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느라 '하고자 하는 일'을 미루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가기 싫어도 직장에 가야 하고, 하기 싫어도 야근을 해야 하는 것. 쉬고 싶고 놀고 싶을 때도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며 내일에 양도하지도 않는다. 지금, 나부터 먼저 행복할 것. 어린이 나라의 영원한 칙령이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이나 신으로 섬기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용의 이름은 무엇인가? 거대한 용은 ‘너는 해야 한다’를 뜻한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어린이들은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의 의무에 쫓기기보다는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자유를 우선시 한다. 어른이 되고서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마음이 공허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싶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나의 이상야릇한 고뇌는 니체의 저 구절 하나로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너는 해야 한다'의 삶을 살아왔던 게 나의 문제였던 거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하려고 한다'라는 사자의 삶으로 넘어가는 게 옳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의지로, 나의 선택으로, 내가 주도권을 갖고서 살아가는 삶을 시작하려 한다. 아이의 태도로 돌아가려 한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타의가 아닌 자의적 행복을 되찾는 게 생각보다 아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란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결국 인간의 행복이란 별다른 게 아니라 햇빛 좋은 날 자기가 원하는 시간만큼 하얀 가르마 위로 햇빛을 쬐어주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내가 먼저, 내 정수리가 먼저 보송보송해지고 볼 일이다. 무엇이든 내가 선택한 삶이라면, 실패해도 좋다. 후회해도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