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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2. 2015

도는 웃음 속에 있다

상대를 웃게 하는 말



웃지 않으면 도(道)라고 할 수 없다. 진리는 사람을 웃게 하면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일수록 진리를 담고 있고 도에 가깝다.    


                                                                                                                       - 노자







#13. 도(道)는 웃음 속에 있다
: 상대를 웃게 하는 말




스피치를 하고 자리에 들어왔을 때 가장 뿌듯할 때는 청중을 한 번이라도 웃겼을 때다. 그럴 때만 '성공이다!'라고 속으로 외치게 된다. 처음 스피치를 시작할 때는 내가 준비한 내용을 잘 말하고 들어왔을 때 성공적인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피치라는 것이 '웃음'으로 귀결됨을 느낀다. 좋은 스피치는 청중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 코미디처럼 빵 터지는 웃음보다는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말하는 전개과정에서 간간이 기분 좋은 웃음을 동반시켜야 한다. 스피치를 떠나서 내가 걷길 원하는 인생의 방향도 결국 즐거움이고 웃음이다.


'웃프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웃긴데 슬프다는 말이다. 웃음과 섞인 슬픔은 슬프기만 한 것보다 더 슬플 때가 많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나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란 작품은 대표적으로 웃픈 소설들이다. 주인공들이 하는 짓이 하도 어수룩하고 순수해서 내내 웃게 되는데 읽을수록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들에게서 느끼는 동정과 연민에 마음이 찡해져서 책장을 덮으면 나도 모르는 새 마음  한쪽에 인생과 사랑에 대한 진리 비슷한 것이 들어와 있다. 두 소설이 뛰어난 이유는 슬픔이 묻어나는 메시지를 슬픔 그 자체로만 풀지 않고 웃음 속에 넣었기 때문이다.  


노자는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일수록 진리를 담고 있고 도에 가깝다고 말했다. 스피치를 하다 보면 노자의 말씀이 옳다는 걸 자주 느낀다. 스피치 동호회에 30대 초반의 대학원생 남성 연사님이 있는데 평소에 철학적인 사유를 즐기는 분이다. 통찰력 있는 내용 자체는 참 좋은데 문제는 너무 진지하고 재미없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따분한 교수님 강의 같다고 할까. 반면 비슷한 또래의 여행광 남성 연사님이 있는데 말하는 것마다 웃음 폭탄이다. 청중을 계속 키득거리게 만드는데 이상하게 다 듣고 나면 수첩을 꺼내게 만든다. 이 연사는 틀에 박히는 걸 질색하는 스타일이라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데도 이야기 안에 메시지를 잘 담아낸다.  


한 번은 스피치 주제로 ‘젊음’이 제시됐다. 대학원생 연사님은 젊음이란 어느 특정한 기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꽤 감동 있는 발표였다. 하지만 더 감동인 건 여행광 연사님의 발표였다. 그는 멋진 말 하나 않고, 조금은 실없게 웃기고 들어갔다. “젊어서 몸 챙긴다고 술 절제해, 좋은 직장 구한다고 여행 미뤄, 돈 아낀다고 외모 안 꾸며, 서로 호감이 있으면서도 결혼 상대자로 조건 안 맞는다고 사랑 안 해... 이 모든 짓들은 ‘돌아이’나 하는 짓입니다. 젊음이 얼마나 눈부신 때인지, 얼마나 보석 같은지 지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마음껏 젊은 시절을 즐기고, 누리고, 사랑하고, 웃고, 놀아야 해요. 저처럼 맨날 술도 퍼마시고요.” 투박하고 촌스러운 화술에 웃음이 풉 터져 나왔지만 젊음의 눈부신 빛이 파도처럼 눈앞에 밀려왔다. 그의 말은 진리와 웃음이 한 데 버무려져 강한 힘을 내고 있었다. 


청중이 웃는다는 건 그들의 감성까지도 움직였다는 말이다. 머리의 이해를 넘어, 감정까지 움직여야 진리도 마음에 더 깊이 와 닿는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느끼는’ 것이다. 웃음이든 울음이든 뜨거운 감정을 통해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리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며, 웃음은 진지함을 이긴다. 


스피치 학원에서 유머수업은 고급반 수업이다. 회사의 CEO가 유머 수업을 듣는 건 그가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CEO가 직원들을 모아놓고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하면 그 회사 분위기 역시 진지할 것이고, CEO가 유머를 섞어가며 직원들을 웃게 만들면 회사 분위기도 유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완성도 높은 스피치는 짜임새만 좋은 스피치가 아니라 청중을 웃게 하는 스피치다. 그리고 웃음 제조의 방식은 각자가 계발할 몫이다. 여행광 연사님처럼 투박하고 촌스러운 스타일도 좋고, 방송인 김제동이나 유희열처럼 나름의 고품격 유머를 표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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