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연출과 쇼맨십
#8.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
: 음성연출과 쇼맨십
같은 말이라도 재미있게 살리는 사람이 있고 재미없게 죽이는 사람이 있다.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은 대화체를 직접인용하며 음성연출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반면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구구절절 설명하길 좋아한다. 우리가 세상이란 무대 위에 선 연극배우라면 말을 잘한다는 건 연기를 잘 한다는 것과 비슷한 일일 테다. '발연기'하지 않는 법은 그 순간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한다. 단순히 대사를 틀리지 않고 전달한다고 해서 좋은 연기라고 말할 순 없다. 중요한 건 느낌을 살리는 일이다.
말도 똑같다. 예를 들어 실수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면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은 연기를 하듯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할 것이다. "며칠 전에 내가 서울역에서 표를 사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아니? '저 무궁화 가는 부산 열차 한 장 주세요.' 그랬더니 이 젊은 남자 직원이 정색하면서 이러는 거야. '손님, 무궁화 가는 부산 열차는 없고요. 부산 가는 무궁화 열차는 있습니다.'"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역에서 되게 능글 맞고 유머러스한 직원을 만났어." 이렇게 결론을 먼저 설명한 후에 자신의 말과 남자 직원의 말을 간접인용으로 전할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묘사하거나 연기하는 대신 말로써 설명해버리면 김 빠진 사이다처럼 이야기의 맛은 살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는 주제로 스피치를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적의 노래 ‘다행이다’를 좋아합니다. 첫 소절이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라는 가사로 시작됩니다. 저 또한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소소한 일상이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질 때입니다.” 두 번째 발표자는 나오자마자 다짜고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그 노래에 대한 사연을 설명했다. 두 번째 발표자의 쇼맨십에 청중은 완전히 매료됐다.
음성연출은 쇼맨십의 일종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용기가 없인 불가능하다. 쑥스러움이 많은 연기자라도 무대에 섰을 때만큼은 자신을 내려놓고 배역에 몰입해야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다. 대화체를 직접인용하더라도 국어책 읽듯이 단조로운 말투로 한다면 느낌이 살지 않는다. 재연을 할 땐 확실하게 '연기'해야 한다. 우리가 보통 '저 사람 참 재치 있다'고 말할 때 그런 사람은 말의 센스가 발달돼 있어서 음성연출을 적재적소에 집어 넣는 사람이다. 당연히 직접인용만으로 대화를 채울 수도 없고, 음성연출이 너무 많아도 이야기가 산만해진다. 때문에 직접인용이 필요한 순간을 잘 포착해, 타이밍을 살려 '명연기'를 펼쳐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