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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6. 2015

손 안의 재료로 승리하다




손 안의 재료로 승리하다
: "단어가 생각이 안 나요"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수라간 정식궁녀가 되기 위해 어선경연을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시제는 만두. 임금님에게 올릴 음식이니만큼 최상급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장금이의 재료는 최악이었다. 다른 경연자들이 다 가져가고 최하급의 고기만 장금에게 돌아왔다. 장금은 어선 전날 밤새 연생과 요리 연습에 매달린다.


연생: 내 것은 별로 신통하지 못한 거 같아! 어디 네 건 어떤가 보자! (장금의 육수를 먹어본다) 이건 맛이 독특한데 어떻게 만든 거야?

장금: 맛있어?

연생: 글쎄... 맛이 있고 없고 보다 그냥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어. 어떻게 만든 거야?

장금: 내 어릴 적 기억인데, 나 어릴 적에 백정마을에 살았거든. 그때 고기를 잡는 백정 아저씨들이 다른 육수를 낼 때는 사태나 양지를 쓰는데, 냉면육수를 낼 때는 설깃살이라는 걸 썼던 기억이 나. 더 맑고 감칠맛이 있다고.

연생: 진짜?

장금: 아마도... 사태나 양지는 반가에 팔고, 남은 고기로 음식을 해먹다 보니 알아낸 거 같은데 아무튼 만둣국 육수와는 다르지만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어차피 남은 게 그거뿐이잖아.


설상가상으로 장금은 각자에게 일정량만 분배된 귀한 진가루(밀가루)를 도둑맞기까지 한다. 최하급의 고기에 만두피를 만들 진가루까지 없는 장금. 막막하다.


어선경연 당일. 긴장감 속에 만두를 만들어 내는 경연자들. 시합이 끝나고 곧바로 심사가 이어진다. 장금의 자리 앞으로 옮겨 온 심사단은 눈이 동그래진다. 숭채 쌈만두와 단호박 만두? 처음 보는 만두라 모두 의아해하는데... 맛을 본 심사단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뀐다.


장번내: 만두소를 싼 이 채소는 무엇이냐?

장금: 숭채이옵니다.

장번내: 숭채라... 그것이 무엇이냐?

장금: 명나라에서 씨앗을 들여와 다재헌에서 키우고 있는 약재이온데 음식을 해도 아주 맛이 좋아 활용해보았습니다.

최상궁: 헌데 너는 어찌하여 나누어준 진가루를 쓰지 않고 이걸로 만두피를 하였느냐?

장금: .......(잠시 생각하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최상궁: 그 귀한 것을 잃어버리다니 제정신이냐?

장금: ......

장번내: (그 사이 단호박 만두도 먹고는) 허... 이것도 다른 만두와는 달리 맛이 아주 독특하구나.

내시1: (맛을 보고는) 예, 그러하옵니다.

장번내: 그래. 꼭 만두피를 그 귀한 진가루로 할 필요는 없지.


장금은 배급받은 재료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결국 경연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장금은 패배는 오히려 승리처럼 보인다. 턱 없이 부족한 재료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금이는 살아오며 겪었던 모든 경험을 총동원해 그 안에서 답을 찾아냈다.


말과 요리를 비교해본다. 여러 식재료를 조합해 음식을 만들듯, 우리는 머릿속에 든 단어를 조합해 말을 만들어낸다. 어휘는 말의 기본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말을 잘 하는 것도 그만큼 손 안의 재료(어휘)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을 못 하는 건 아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혹은 단어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쩔쩔매더라도 말을 잘 할 수가 있다. 장금이가 손 안에 가진 재료로 승리했듯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최상으로 조합해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음 장에서 단어를 조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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