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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4. 2021

1. 시작

나와 내 생각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자 한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까닭은 요즘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2년 넘게 취준을 하고 있다. 이력서와 자소서를 꾸준히 작성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는 원래 작가를 꿈꿨다. 소설을 쓰고 싶었다. 대학 졸업 때가 되자 마음이 급해졌고, 일명 취준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PD를 지망했다. 글 쓰는 일에는 자신 있었다. 지상파 필기시험을 붙고는 나름의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됐든, 나는 결국 드라마PD가 되기를 포기했다. 취준이 1년이 넘어가자 불안감에 빠졌고, 자신감을 상실했으며, 결국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도 글이 쓰고 싶었는지 기자가 되기로 했다. 우연히 저널리즘 강의도 듣게 됐다. 이후 나는 기자를 지망하며 자소서를 써내려 갔다.

자소서 속의 내 모습은 멋있는 편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확신에 차있다. 서류에서 붙으면 자소서 속의 내가 진짜 나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의구심이 든다. 나는 '추진력' 있는 사람인가? '끈기'가 있는 사람인가? 그 전에 이 내용에 확신하는가? 이젠 모르겠다. 취업에 필요한 역량에 맞춰서 나의 이야기를 짜맞춰 가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잊어버렸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머리가 막힌 느낌이랄까?)

나의 취향은 곧 나다. 취향이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그저 기자 지망생일 뿐이다. 즐거움을 모르는 취준생일 뿐이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 대해 묻는다면(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좋아하는 구절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마음에 맞는 영화를 보면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내용을 되새겼다. 나는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 멜로 중에는 치정멜로가 끌리고, 가족 드라마 중에는 콩가루 가족 이야기가 끌린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면서 밤새는 걸 좋아한다. 나는 만화나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 번 꽂히면 밤새 볼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고, 나름 자랑스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좋아하다는 것, 그 취향이 내가 누군지 말해줬기 때문이다.(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렇다. 행복한 멍충이였던 때가 그립다.)

취준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다. 다만, 나를 즐겁게 했던 내 머릿속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예전의 나를 되찾고자 한다. 이제부터 나와 내 생각에 관한 에세이를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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