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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4. 2021

12. 고래 실험

사람을 겉으로 판단을 해?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원작이 비해 실망스러웠다. 원작의 매력은 장난스러움에 있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놀란 아이들에게 왜 놀란지 모르겠다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메리 포핀스가 영화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옛날의 장난기를 잃어버렸다. 줄리 앤드류스의 장난기 넘치는 이미지를 에밀리 블런트가 따라잡지 못한 데도 있겠지만, 우선 스토리가 너무 진지하다. 교훈이 넘쳐난달까. 영화를 관통하는 교훈은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하지 말라'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스토리텔링의 힘이 이야기에 실린 주제의식에 반박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면,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스토리텔링에 실패한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이기상 선생님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을 해? 겉으로 판단하지 뭘로 판단해, 그럼. 속이 보여야 (속을) 판단을 할 거 아니야."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더 속물일까, 아니면 사람을 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알면서도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하며 젠체하는 사람이 더 속물일까? 내가 봤을 때는 이 말을 진리로 여기며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속물의 대마왕이다. 뭐,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사람을 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나는 이 명제로 실험을 했더랬다. 내 이미지를 스스로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고래를 좋아하는 척하기로 했다. 겉으로 봤을 때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 상어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아쿠아리움에 가서 상어 인형을 사오기도 했다. 짝이 됐을 때 왜 상어를 좋아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친구는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냥 좋다고 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때때로 그 친구를 기억해 내곤 했다. 상어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친구가 상어를 좋아하는 데서 어떤 순수함을 느꼈다. 어린아이들는 대부분 공룡이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한 때를 보낸다. 내 동생에겐 그게 포크레인이었다. 그냥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없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두산 베어스 인형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내가 기억엔 없는 일이다. 무작정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래서 내게 순수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기상 선생님의 말을 보고, 나는 내 겉모습을 구축하기로 했다. 상어를 좋아하던 친구를 기억하며 나는 고래와 상어 사이에서 고민했다. 무엇을 좋아하는 척 할까. 소개팅에 나가서 대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뭘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뭘로 대답할까 상상하며 쓸 데 없이 시간을 낭비했다. 이런 고민을 친구에게 말했다.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나의 계획을 말했더니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상어나 고래보다는 가오리가 낫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가오리가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단다. 찾아보니 웃상이었다. 이제 나는 고래와 가오리 사이에서 고민했다. 상어는 그때 그 친구를 따라하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고래를 선택했다. 가오리는 이상하게 호감이 안 갔다. 이후로 나는 공책을 사도 고래로 샀다. 프사도 고래로 바꿨다. 그리고 고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영문학과 수업을 들을 때 학생들의 과제를 갖고 일일이 상담해주는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 당시 교수님의 말이 영향을 미쳤다.  나는 영화를 보고 인상 깊은 장면을 꼽았다. 교수님은 그 장면이 인상 깊은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나는 그냥 좋다고 했다. 장면의 웅장한 분위기가 끌렸다고 설명했다. 교수님은 부족하다고 했다. 어떤 걸 좋아하기 위해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고래와 가오리 사이에서 고민할 때 했던 상담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고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진짜로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스터디에 새로 들어온 여자였는데, 고래가 그려진 공책을 보더니 자기도 고래를 엄청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여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고래는 행운을 상징하잖아요." 불충분한 답변이었다. 행운을 상징하는 다른 것도 많은데 왜 고래냐고 물었다. 여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서 좋다고 대답한 것인데,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묻는 표정이었다. 여자가 반문했다. 나보고 왜 고래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래를 좋아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아직 이유를 못 찾아서 진심으로 좋아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황당하게 끝났다. 이후 나는 더 이상 고래를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주변에 고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너무 많이 말해 버린 탓이었다.​



우리는 사람의 겉을 보고 판단한다. 이에 따르면 나는 뭐든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는 사실이다. 나는 대부분이 '별로'다. 그래서 결국 고래도 좋아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고래를 좋아하려고 해도, 고래가 별로여서 좋아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겉모습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최상의 수단일지 모르겠다. 잠깐 만나던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이 내게 호감을 느낀 포인트를 알고 있다. 처음 만난 날 그 사람은 가방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담고 있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 소설을 읽어 봤냐고 물었다. 내가 읽어본 소설이었다. 나는 솔직히 답했다. 이 책 별로라고. 그 사람 눈이 번쩍 뜨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유도 설명했다. 별다른 통찰 없는 통속 소설인데 왜 민음사 세계전집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음사 시리즈를 믿지 말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후 잠깐동안 만났는데, 뭐든 '별로'라고 말하는 게 좋다고 했다. 결국 보여지는 '별로'가 그 사람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는 '별로'를 남발하는 사람이었다.


고래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 또한 나를 보여줬다. 나는 '별로'인 것으로 정체성을 획득하는 사람이다.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별로여서, 별로가 아닌 것을 그나마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세상이 긍정적인 사람을 요구하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려고 노력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친해지면 본성이 드러났다. 1년 동안 매일 같이 만나 신문을 읽던 그룹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나중에는 신문을 읽을 때보다 수다를 떨 때가 많았다. 그때 느꼈다. 나는 '별로'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믿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봤을 때는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는 게 영 틀린 것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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