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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4. 2021

3. 현대인의 비극

한동안 바빴었다. 현실에 들떠 있었다. 무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로 가득찬 밤을 보냈다. 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그 모든 기대와 희망들이 사라져 버린 오늘, 나는 다시 블로그로 돌아왔다. 얼마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4개월이 지나있었다. 오늘은 비극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내 인생은 너무 사소해서 비극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6장에서 비극에 대해 정의한다. 짧게 스치는 듯한 기억으로 비극의 주인공은 영웅이나 위인이어야 한다. 내 인생이 비극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다. 너무 사소해서 사라질 것만 같은 존재는 비극에 등장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내가 겪는 비극이 나에게 존재하는 비극이지만은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좌절이 고대인의 비극이라면, 나의 사소한 좌절은  '현대인의 비극'이다. 현대인의 비극은 한마디로 정의된다.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것." 그것이다.


소설 <롤리타>로도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옛날에 독일 베를린에 알비누스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부유하고, 품위 있고,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린 애인 때문에 아내를 버렸다. 그는 사랑했으나, 사랑받지 못했다. 결국 그의 삶은 참담하게 끝이 났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며, 만일 이야기를 해내가는 과정에 이득이나 기쁨이 없었다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한 인간의 삶을 축약한 이야기야 이끼로 장정된 묘비조차 꽉 채우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늘 환영받는 것은 디테일이다."

이 소설은 나보코프가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할 당시에 연재하던 작품이다. 위의 인용은 미국으로 망명을 간 뒤 책을 출판하면서 새로 덧붙인 내용이다. 나는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요약한 이야기는 다 거기에서 거기일 뿐이며,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디테일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이후로 나는 이 말을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았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의 답은 하나다. "디테일."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의 깨달음을 얻었다. 각자 인생의 디테일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서 하나의 거대 카테고리로 묶는다면 그건 "사랑했으나,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일 것이다.

나의 사소한 순간들을 묶어 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로 코앞에서 노는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는 말을 못해서 점심시간 내내 우두커니 서서 구경만 했던 기억,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학에 입학해서 영원히 혼자일까봐 두려워 했던 기억, 좋아했던 사람에게 거절당한 기억, 읽씹과 안읽씹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최근에는 회사에서 탈락 통보를 받은 기억. 나는 사랑했지만, 상대도 나를 사랑할지는 확신하지 못했던 기억들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랑받지 못한 기억들이다. 내가 현대인의 비극이라 명명하는 것들이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이를 흔한 비극이라 일컫는다. 누구나 겪는 일이며, 세상에 널려 있어서 기억되지 못할 기억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와 관련 있는 사람들(아마 우리 부모님)은 나를 이러한 비극에서 보호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다. 내가 상처받지 않길 원했고, 그래서 안전한 길을 걷길 원했다.(지금도 그런 거 같다.) 나는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흔한 비극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해 애써왔을 거란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비극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사소한 불행이고, 우리에겐 흔한 비극이지만, 너에겐 아플 것이기에.

요즘 편두통이 잦아졌다. 현대인의 비극이 편두통으로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찬 미래 같은 건 그려지지 않는 요즘이다. 밤에 길을 걷다가 마주한 초승달이 '어둠 속의 웃음소리', 그러니까 세상의 비웃음으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러다가도 영국 드라마 <마이매드팻다이어리>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드라마는 자기혐오로 가득찬 주인공이 자살 시도를 한 후 일상에 복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꾸준히 상담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일기장에 써낸다. 상담을 받지만 자기 혐오는 끝이 없다. 그러다 상담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어렸을 때의 너를 떠올려 보라고.' 그 어린 아이는 천진난만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차있다. 너무 순수하고 무해해서 해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상담사는 주인공에게 묻는다. '저 아이에게 지금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을 할 수 있니?' 주인공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다. 왜냐하면 답은 '아니오'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자기혐오로 가득찬 순간에 희망 찬 미래를 그리던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도저히...도저히... 너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해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현대인의 비극'은 오늘도 우리 마음 속에서만 조용히 소용돌이 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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