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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4. 2021

4. 우리가 기록하는 이유

친구 중에 기억력이 안 좋은 친구가 있다. 대학 생활 내내 붙어다녀서 추억이 많은데 내가 기억하는 것을 친구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한번은 왜 이렇게 기억을 못하느냐고 장난스럽게 다그친 적도 있다.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답했다.

"내 기억 창고는 한정되어 있어서, 중요한 것만 기억해."

영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러면 나와의 추억들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작년에는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내가 말하는 것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래서 장난으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너랑은 추억이 없다"고. 이 말은 사실이었다. 나 혼자 기억하는 추억은 추억이 아니게 된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보면 내 기억이 맞는 건지 의심을 하게 됐다. 진위여부가 불분명해진 추억은 더 이상 추억일 수 없다. 추억 또는 기억은 그만큼 공유될 때 의미가 있다.

저번달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친구는 예전에 누군가가 한 말을 들려줬다.

​"누군가가 얘기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니까 추억이 없는 거래. 그래서 요즘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나는 그 말이 내가 한 말임을 상기시켜줘야 했다. 그리고 추억을 기록하는 일을 축하해 줬다. 메모장에 쓴다는 일기를 살펴봤다. 팀장님과 쪽갈비를 먹었는데 맛있었다는 이야기가 써져 있었다. 너무 사소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먼 훗날에 그 메모를 보며 팀장님과 쪽갈비를 먹었던 날의 (어색한) 분위기가 기억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기록한다는 것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일이다.


기억은 내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다. 나는 기억에 의해 구성된다. 나는 여행을 다니며 본 도시들을 기억한다. 그 중에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도시들도 있었다. 베니스는 생각보다 습해서 생각보다 별로였다. 기대 안 한 피렌체의 거리는 아름다웠다. 눈이 쌓인 삿포로는 도시인데도 공기가 맑았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 여행을 간 부산은 거대하고도 아름다웠다. 이러한 기억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해 준다. 나의 도시 취향은 웅장함, 한적함, 단정함 등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나의 취향이 곧 나 자신이 된다. 기억은 결국 나를 말해주는 이정표다.

나는 오늘 기록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의 생각들을, 기록들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기록이 나의 존재를 말해준다면, 내가 기록하려는 이유는 지금의 내 존재가 스러질 것만 같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평소와 달리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될까봐 불안해서일까? 이대로 사라질까봐? 나는 두근거림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의 머릿속을 기록한다. 기록해서 남겨진다면, 그래서 어딘가에 새겨진다면,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이 땅에 붙어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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