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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13. 2021

30. 갑자기 믿고 싶어졌다

비관주의자의 비관에 대한 비관

'시간을 되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느냐'는 질문을 비웃었다. 논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할 거 같지 않아요. 그 당시의 선택은 제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한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말에 내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는 자만심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그 뒤에 항상 덧붙이는) 같은 기억을 갖고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느냐는 질문에도 내 대답이 항상 '예스'였던 이유는 세상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 안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그래서 '의지의 발현'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간다는 믿음 같은 건 믿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이해가 빨랐다. 논리 같은 걸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수학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수학을 잘 하는 편이었고, 성향 검사를 해도 이과 성향이 짙게 나왔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문과를 선택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문과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내가 봤을 때, 사람들이 문과 성향과 이과 성향을 구분하는 기준은 '믿음'이다. 문과 성향의 사람들은 믿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과 성향의 사람들은 믿음을 거부함으로써 삶의 체계를 구축한다. 김춘수의 시 <꽃>을 빌려 표현하자면, 문과 성향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존재를 확인'하는 반면에, 이과 성향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아닌 것들을 삭제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는 에서 (사람들이 보기에) 이과 성향의 사람이었을 거다.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게 아니면 믿지 않았다. 바깥 세상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웠다. 학창시절 국어와 도덕이 가장 어려웠다. 남들은 쉽게 받아들이는 클리셰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클리셰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의 영역이다.(빨강이 왜 열정이란 말인가?) 그래서 세상이 남발하는 '자아실현'의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어 곤욕스러웠다. 바깥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아실현이 내 이해의 체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자아실현이란 "하나의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던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다. 교과서에서 인간이 직업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아실현이다. 도대체 자아의 본질이라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까지도 (내것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의) 자아의 본질을 본 적이 없는 탓에 자아실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믿지 못한다.


내가 '의지의 발현'과 '자아실현'을 믿지 못한다는 데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인간을 주체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믿음이 그것이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뒷방 노인네 흉내를 냈다.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6살 때부터 어른이었다. 내 주변의 일어나는 사건들을 목격하면서 세상 일은 다 배운 것처럼 생각했다. 내가 본 세상은 '주체성'과 무관했다.


나는 항상 좌절했다. 유치원 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얼마나 소심했냐면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그 주변에서 멀뚱히 구경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지켜보면서 판단할까봐 행동 자체를 안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미끄럼틀을 정말 타고 싶어했다. 그냥 타는 게 아니라 미끄럼틀 옆을 엎드려서 타고 내려오고 싶었다. 놀이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미끄럼틀 주변에서 사라졌을 때,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 처음 해보는 탓이었을까? 겁에 질려 몸에 힘을 준 탓이었을까?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순조롭게 내려가지 못했다. '끼이익'거리는 마찰 소리가 났고, 중간에서 멈춰섰다. 그러다 몸이 기우뚱하더니 등쪽으로 수직낙하했다. 미끄럼틀을 타다가 떨어진 것이다. 아마 창피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나를 지켜보는 친구들 사이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조용히 숨었을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 기억들은 대부분 이렇다. 뭔가를 하려다 좌절한 기억들.


나는 비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의 체계를 가장 안 좋은 기억들로 구성하고,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아는 척 한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나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아무튼 그런) 순간들을 목격하면 크게 웃는다. 내 생각이 맞았다는 자만감에서 나오는 깨달음의 웃음이었을 거다. 이렇듯 나는 웃음에서조차 체계를 찾는 사람이다. 나의 체계 속에 이해는 존재해도(실제로 나는 이해심이 많다) 이해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도 무언가를 믿으려는 순간에는 망설인다. 믿을 근거가 없잖아요!


그런데 최근 그 근거없는 믿음이 필요해졌다. 그 증거로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23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 몰래 소설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그런 데 돈을 쓰다는 사실을 알면 잔소리 할 것을 알기에) 한동안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잘 풀리지 않았다.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책을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다.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느끼기엔) 침대에 누워 허송세월을 보냈다. 신화 속 영감을 기다렸던 걸까? 그때로 돌아간다면 '직업'을 얻기 위한 뭔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다. 나는 항상 겁에 질려 있었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을 거란 생각부터 했다. 6살 때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듯이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을 거 한번 해볼 걸이란 생각이 든다.(비관주의자의 비관에 대한 비관이다.)


나는 여전히 잘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보고 느낀 것만 믿는다. 나는 아직까지도 '자아실현'과 '의지의 발현' 같은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취준을 오래하면서 배운 건 있다. 자아실현을 충족시키는 자아의 본질은 의지의 영역이다. 내가 되고 싶다고 믿으면 나는 그 방향으로 향한다. 이때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의지의 발현이다. 어쩌면 주체성이 있다고 믿어야 주체성을 확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주체성의 존재는 낙관주의의 발견이다. 그러니 비관주의인 내가 알 수 있었을리 없다.


나는 믿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명 수능 대박이 났다. 당시 나는 어디에 홀렸는지 성적이 부족하면서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는 과거에 미신 같은 믿음을 가졌던 나를 비웃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찍은 게 다 맞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생은 운이라고 생각했다. 순간에 나를 맡기고, 운이 찾아온다면 반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운이 몇 년 동안 사라진 지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멍청한 믿음과 거기서 나온 의지가 나의 믿음을 현실로 가져다준 게 아닐까?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볼까?


요즘 무언갈 손에 잡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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