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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13. 2021

31. 지옥에 떨어진 스님

돈키호테가 21세기를 살았다면

"감히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소설 <돈키호테> 中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자신이 이 세상을 구할 기사라고 착각한다. 돈키호테의 위대한 모험은 바보 같은 착각에서 시작했다.      

     

깊은 산 속에 낡은 절이 하나 있었는데, 지붕 위에는 sky 라이프 안테나가 달려있었다. 절에는 노승이 살고 있었다. 노승이 스님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고 나서였다. 노승은 만화영화 중독자였다. 다른 것보다도 히어로물을 좋아했다. 하도 많이 본 탓에 어느 날부턴가 자기가 세상을 구할 영웅이라고 믿게 됐다. 그러다 당시 푹 빠져있던 만화 영화의 주인공인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노승은 이후 손오공이 앞에 나타나길 기다렸다. 기다리던 중 노승은 “원펀맨”이라는 만화를 보게 됐고, 훈련만 하면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수련했다.     


평소처럼 10km를 뛰고 팔굽혀펴기 100번을 하던 중 노승은 바위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사실을 말하자면, 근처 공사장에서 사고로 바위가 떨어진 소리였다. 노승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산에서 살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가다보니 갓난아이 하나가 있었다. 노승은 그 아이가 손오공이라고 확신했고, 서천으로 향하는 모험을 시작했다. 우선 노승은 산 밑으로 내려가 중고차 매장에 들렸다. 만화에 나오는 삼장법사처럼 벤츠를 몰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는 노승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돈이 있어야 한다며 노승을 내쫓았다. 노승은 흥분해서 직원들에게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욕을 퍼부은 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부처님의 뜻에 따라 서천으로 가고 있소.” “충남 서천군 말씀하시는 거죠? 성인 1명 12,800원입니다.” 노승은 주머니에 있던 만 원을 내밀었다. “이걸로 안 되겠소?” 그때 뒤에서 기다리던 남자가 나섰다. “서천으로 성인 2명이요. 돈은 여기 있습니다.” 노승은 남자의 친절에 감동해서 표를 받은 뒤 칭찬을 쏟아 부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남자가 결연한 눈빛으로 노승에게 말했다. “이 어리석은 중생을 받아주십시오!” 노승은 남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오정을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버스에 오르고 남자는 계속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드디어 받자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중이 되겠어!” 그렇다. 남자는 여자 친구에게 차인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가장 비참한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남자는 버스 안에서 비통함에 잠겨 내내 울었다.     


서천터미널에 도착하자 현수막이 보였다. “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 평소 주꾸미 볶음을 좋아하던 노승은 남자에게 축제에 가자고 했다. 남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비참하기로 결심했으므로 무기력하게 따라가기로 했다. 물론 택시비는 남자가 냈다. 한 손에는 갓난아기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주꾸미를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한 취객이 마음속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다. “뭐야? 스님이 주꾸미 먹어도 돼? 갓난아기는 또 뭐고?” 스님은 취객이 관심을 가져주자 기뻐하며 대답했다. “아, 기묘한 조합이지요? 동감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부처님은 세상을 구할 영웅에게는 시련을 주는 것을!” 취객은 노승이 자기를 놀린다고 느끼고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노승은 취객의 주먹을 노련하게 피한 뒤, 한 손으로 남자를 제압했다. 취객이 아파하자 취객과 함께 온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흥분해서 노승에게 덤볐다. 포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사이 실연에 빠진 남자는 도망쳤다. 10분 뒤 상황이 정리되었는데, 쓰러진 사람들 한가운데 한 손에 아기를 든 노승이 당당히 서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전직 UFC 파이터가 놀란 표정으로 서있었다.     



“여러분이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잇~~~츠 타임! 청코너. 12승 무패의 기록을 갖고 있는 예순 살의 노장. 부처님 말씀에 따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서천으로 갔다가 이곳까지 왔다는 UFC 최고 챔피언. 소개합니다. 지옥에 떨어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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