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어린이였다. 어른들의 말을 진리로 곧잘 받아들였다. 요즘 유튜브 추천 영상 중에는 인생 조언 영상이 가끔 보인다. 잘 누르지는 않지만 썸네일만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다. 보통은 '평범한 인생을 살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낭중지추'가 적당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조언이다. 다행인지(?) 이 조언은 나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과 맞아 떨어져서 시너지를 냈다. 덕분에(?) 나는 남들 위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낭중지추의 삶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다. 스무 살 때 나는 다이어트에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살이 많이 쪘다. 그때까지 외모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살을 무럭무럭 키운 감도 없잖아 있다. 수능이 끝나고 나는 눈을 떴다. 다름 아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었다. 또다시 낭중지추가 되기 위해,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믿으며, 최선을 다했다. 다이어트를 했다. 하루에 3시간씩 운동했다. 그리고 안 해본 식이요법이 없다. 덴마크 다이어트는 시작한 지 이틀만에 기절한 탓에 자몽 16개라는 오욕을 남기고 실패했다.(나는 아직도 자몽만 보면 어지러워서 자몽 에이드도 먹지 않는다.) 단백질 쉐이크도 먹어봤다. 어쨌든 열심히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다이어트를 했다.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탓에 다이어트가 힘들었고, 그래서 괜히 우울해졌다. 식단조절을 못하느니 안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입맛을 없애 버렸다. 한약 다이어트를 했다. 덕분에 살은 쑥쑥 빠졌다. 그리고 꾸미는 데 사력을 다했다. 돈을 쓰고 아무리 꾸며도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든 적은 없었다. 1년이 지나고 나는 외모에서 낭중지추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스물 한 살이 견디기엔 어려운 진실이었다.
스물 두 살에 어떤 언니를 알게 됐다. 얼굴도 눈에 띄고 날씬하고 성격도 좋은 그런 언니였다. 나는 언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언니가 인터넷에서 말하는 대학생의 '표준'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표준'이란 단어가 떠오른 순간 깨달았다. 표준에 걸맞는 그 적당히가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다. 적당한 키, 적당한 몸무게, 적당한 얼굴, 적당한 몸매, 적당한 패션 센스, 적당한 사교성, 적당한 모든 것이 내게는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내가 끊임없이 그 적당히에 맞추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깎아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뭐든지 적당한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적당하길 포기했다. 나는 어차피 낭중지추였으니까.
어른들은 표준을 뛰어넘으라고 말한다. 기존의 판, 즉 격 또는 표준을 깨는 파격만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그러나 정작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표준에 이르지 못하는 '미만' 또는 '초과'다. 파격은 생각보다 쉽다. 표준조차 이르기 어려운 게 일반적이다. '사당오락', 수험생이 4시간 자면 대학에 붙을 수 있고 5시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대한민국 속담이다. 여기서 5시간은 표준이고 4시간은 표준을 뛰어넘는 노력이다. 수험생 때도 나는 이 표준조차 지키기 어려웠다. 나는 적어도 8시간을 자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적게 자면 수업 시간에 잠들었다. 잠이 워낙 많아서 1교시에 잠들어서 6교시에 깨어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 표준을 뛰어넘긴커녕 표준조차 이르지 못할 때 괴로움을 느꼈다. 파격적인 '미만' 또는 '초과'의 삶은 그때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 나와 같은 괴로움에 신음하는 인물을 목격했을 때 나는 어딘지 반가움을 느꼈다. 소설 <삶은 다른 곳에>는 일명 '쿨'함을 추구하지만 '쿨'하지 못한 인생에 고통스러워 하는 젊은 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젊은 시인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외모를 가늠한다.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을 마주할 때면 그 자신감을 잃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엄마와 엄마 친구들과 해변에 갔을 때의 짧은 에피소드다. 주인공은 엄마를 포함한 아줌마들이 창피하다. 시끄럽고 고상하지 못하다. 주인공은 아줌마들 등에 썬크림을 발라주다가 문득 결딜 수 없는 창피함을 느낀다. 해변에서 이성과 '쿨'한 모습을 연출하는 다른 젊은이들을 보니 더 그렇다. 젊은이는 원래 쿨한 게 맞는데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대로 해변을 달린다. 무작정 달린다. 이 창피한 아줌마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주인공에겐 비극이지만 보는 우리에겐 희극이다.
어렸을 때 자영업을 하는 아빠가 조금은 창피했다. 남들처럼 출근하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다르다는 사실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다정한 편이어서 가끔 유치원 창문으로 풀숲 사이에서 까꿍하고 나타났다. 유치원에 있는 나를 보기 위해 장난스럽게 찾아온 것이다. 아빠를 발견하면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아빠들과 달리 유치원에 나타나는 아빠가 창피했다. 나는 남들이 볼까봐 주변을 살피며 손을 저었다. 빨리 가라고. 당시엔 비극이었지만 지금 보면 희극이다. 우리 아빠는 유쾌한 아빠였던 것 같다.
표준에 맞추기 위해 애쓸 때 우리는 웃긴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더욱 재밌는 건 표준에 맞추려고 노력해도 표준에 들어가지 못할 때다. 스무 살 때 스키니진이 유행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리가 튼실한 편이어서 스키니진이 안 어울렸다. 스키니진을 포기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됐다. 그래서 억지로 입고 다녔다. 창피하지만 색깔별로 입고 다녔더랬다. 그 당시 찍은 사진을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너무 파격적이어서. 너무 안 어울려서 차마 봐주기 힘들다. 남들과 눈썹 모양을 맞춘 적도 있다. 나는 눈썹이 진한 편이고, 그 눈썹은 호를 이루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일자 눈썹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눈썹을 일자로 맞추기 위해 눈썹 산을 자르고 밑을 정리하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다 눈썹 반쪽을 날려 먹은 적도 있다. 사진을 보면 눈썹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름 파격적인 눈썹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표준이고 파격이고 다 포기했다. 그냥 편하게 살기로 했다. 애쓰면 더 우스워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였다. '평범한 인생을 살지 말라' '남들처럼 살지 말라'는 성공한 이들의 말을 보면 더 이상 감흥이 없다.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평범하기도 어렵고 남들처럼 살기도 어렵다. 가만히 있어도 파격이다.
우리는 표준과 그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 갈팡질팡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 포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다. 영원히 갈팡질팡하며 표준에 이르지 못했다 표준 밑으로 갔다가 표준 이상을 해냈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가 또 그 바닥에 묻혀있다가 갑자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털고 있어났다가, 그냥 되는대로, 기준 없이. 남들이 말하는 성공은 글러 먹은 거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라면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