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디스크
마음이 답답하다. 가슴 바로 아래 명치가 꽉 막힌 느낌이다. 나는 또다른 헤어짐을 경험했는데 크기와 깊이에 관계 없이 떨어지는 일은 항상 후유증을 남긴다.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흐느낀다. 슬픈 게 아니다. 스스로를 괜찮은 상태로 만들기 위한 조치다. 결국 산다는 게 각장 중요한 문제 아니던가.
나에겐 결정권이 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떠올리며 따라한 게 아니라고 분명히 하고 싶다.) 죽음은 삶의 대조어로 사용된다. 하지만 각 단어를 동사로 바꾸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산다의 반댓말은 '살지 않는다'다. 살지 않는다고 죽는 게 아니다. 죽는다는 하나의 능동어다.
예컨대 '나는 그 사람과 같은 세상에서 살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살지 않는다는 표현을 죽는다로 교체하면 '나는 그 사람과 같은 세상에서 죽는다'가 되는데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전자는 헤어짐의 잔향을 품고 있다. 반면 후자는 동시성, 연대, 운명으로 사고를 이끈다. 두 사람은 영원히 같은 세상에 있을 것만 같다.
죽는다는 말 아래에는 영원이 자리잡고 있다. 죽어서 자면 된다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깨어나는 게 전제되지 않은 잠은 잠이 아니다. 잠에는 '잠시 쉰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죽는다는 영원히 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관계는 죽었다. 당신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뒤돌아보지 않을 작정이다. 뒤돌지 않고 살 것이다. 뒤돌아 살진 않을 것이다. 뒤돌면 마음이 답답하다. 가슴 바로 아래 명치가 꽉 막힌 느낌이다. 나는 흐느낀다. 슬퍼서다. 스스로 괜찮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내겐 결정권이 있다.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다. 당신은 내가 보지 않는 뒤편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