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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민혁 May 31. 2016

소수점 인간은 없다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고를 보고

회사의 주업인 웹사이트 개발 및 공급은 '맨먼스' 방식으로 돌아간다. 풀이하면 man/month로 월별 투입 인력이다. 견적 제출에서 클라이언트 편성 예산이 모두 이 기준에서 이루어지기에 메이저 웹에이전시건 마이너 한 에이전시건 모두 이 방식에 따라 일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실제 투입 인력을 제대로 인정하여 클라이언트 측도 제대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에이전시도 그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럼 웹에이전시의 고질병인 야근은 100% 사라진다. 그런데 왜 이게 안 고쳐지냐면 가장 큰 이유는 출혈경쟁에 따른 할인단가이다. 이에 따라 두 번째 이유도 등장하는데 대기업에서 예산을 많이 확보 안 하는 자세가 굳어졌다.


뭐 이 부분은 업계 왕따를 스스로 자초할 필요도 없고, 우리만 고고한 척 하기도 웃겨 과감히 생략한다.


슬쩍 한 마디 귀띔하자면, 일개 웹에이전시 사장 몇 명이 절대 못 바꾸는 구조다. 이는 한국 경제가 박정희 때부터 대기업 주도로 중소기업이 밑에서 떠받히는 산업 모델을 자리 잡게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 조선소가 망하면 협력업체가 줄도산하는 것이고, 모 대기업 완성차 업계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경영악화에 따라 자살도 하는 일도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참 이 나라가 올바른 자본주의도 아니고 불합리하고 정의롭지도 못해 개혁의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허나 이 문제는 사회 구조 자체의 문제기에 국민 몇 명의 대오각성이나 국회의원 몇 명이 부술 수 없는 패러다임이다. 나아가 '일개' 대통령 1명 조차도 못 부수리라 본다. 이 사례에 저항한 건 아니지만 다른 부분에 저항했던 대통령인 노무현을 자살시킨 이 사회를 보면 지금 권력층 조차도 서로 '머리 끄덩이'를 붙잡고 있기에 각 개인이나 조직 몇 개가 노력한다고 바뀔 문제가 아니다.


개혁의 방법은 불란서에서 일어난 '빠쓰띠유 데이' 정도는 한반도에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건 근시일에 발생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고...


좌우간 신라가 고려로 바뀌고,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 듯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바뀔 사건이 벌어져 지금 산업구조가 개혁되지 않는 이상 못 바꾼다. 앞서 말했듯 '일개' 대통령 1명도 못 바꿀 정도로 잘못된 사회 구조가 옹고하다.


국호 교체 수준의 '사회 포맷 & 재설치(?)'만이 답이다.




이 맨먼스 체계를 겪다 보면 참 해괴한 일이 파생되는데, 소수점 맨먼스이다.


위에 설명했듯이 1달에 투입되는 인력 숫자인데 소수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5 맨먼스란 건 해당 프로젝트를 하는데 1달 1.5명을 투입하란 것이다.




하다 보면 가능은 하다. 어떻게 하냐면 0.5에 해당된 사람이 다른 프로젝트를 겸업하면 된다. 이것이 누적되고 파생되다 보니 여러 폐단이 나오는데 일차적으로 살인적인 노동량이다.


내가 출판사 다니다 웹 업계 온 것은 짧지만, 같이 일하는 이진영 대표가 10년 넘게 종사하여 주워들은 게 있는데, 웹에이전시 업계에 플젝에 따른 사망자가 3명이다. 그중 1명은 올해 들었다.


단순히 내 주변에 없어서 체감이 덜할 수 있지만, 확실한 팩트는 몇 년에 1번은 사망자가 나오는 노동량이다.




퀄리티 문제도 발생한다. 허나 이건 대한민국 특성상 큰 문제는 안된다.

어떤 특성이냐하면 과정은 중요치 않고 결과만 따지는 국민성.


디자인이 똥이건 UX가 똥이건 개발상 큰 버그 없고 뭔가 작동하면 땡인 사회 분위기.

이는 한국에서 전세계를 뒤흔들 고퀄리티 웹사이트나 앱이 못 나오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한다.


근데 뭐 이건 진짜 나라 전체의 문제다. 이 업계만이 아니다. 나랑 상관없는 업계를 찍어 비유 삼자면 문학계가 그렇다. 일본도 중국도 기타 동남 아시아 몇몇 국가에 나온 노벨문학상이 GDP 2만불인 대한민국에 안 나오는 이유는 전지구를 흔들 고퀄리티 창작물이 못 나오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본론을 시작한다. 앞서 지적한 문제 중 하나인 소수점 인력 산정에 따라 인력 중복투입 문제가 다른 산업분야에 사망자를 불러왔다.


무슨 사건을 일컫냐면 바로 지하철 2호선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건이다.

방금 뉴스 보는데 서울메트로가 산정한 투입인력이 역 하나에 1.29명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은 2인 1조 인력이 스크린도어 수리에 투입되면 사망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전혀 없는 사건이다.

헌데 예산이나 인력을 소수점인 1.29명으로 하니 결국 2인 1조 일 때도 있고, 이번 사망사고처럼 1명만 투입될 때도 있다고 한다.


소수점 인력은 결국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29란 소수점 투입인력은 실제 필드에서 1명이 과로하거나, 2명이 평범히 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아수라 백작이 아니기에 절반으로 나눠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수점 인력이 산업계에 자리 잡힌 한국만의 비합리적 산업구조가 20살 스크린도어 청년 노동자를 죽여버린 것이다.




앞서 말한 웹에이전시 업계 과로사는 내가 들은 게 10년 넘게 3명이다. 이를 평균 내면 3-4년에 1명 죽는 꼴이다. 그나마 사무직이라서 3-4년 주기 같다.


헌데 스크린도어 수리 업계의 경우, 2013년에 1명, 2014년에 1명, 올해 2016년 1명 나왔다. 사무직이 아니다 보니 1-2년에 1명씩 죽는다는 평균치다.


일이 진행되는데 1-2년에 노동자 1명은 죽어야 한다니.

정말 무섭다.




이번 스크린도어 수리공 사망자분의 명복을 빈다.


20살이면 앞으로 겪을 것도 많을 창창한 나이인데 스크린도어 수리하다가 죽게 되었다는 점이 솔직히 너무 불쌍하고 슬프다. 20살이란 나이는 정말 좋은 나이인데...




지엽적 잡담인데 과거 2PM 재범이 어릴 적 한국 욕을 인터넷에 썼던 게 훗날 밝혀져 곤욕을 겪었다.

당시 재범의 글이 'korea is gay', 'i hate korea'란 글이라고 한다.


오늘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건 일면 중에 소수점 인력인 '역 1곳에 1.29명 투입'이란 뉴스를 보고, 이 나라 산업계에 자리 잡힌 노동 문화나 경영 문화에 역겨움까지 올라온다.


재범이 했던 말대로 나 역시 '아이 헤이트 코리아'란 말이 나온다.

진짜 퍽킹 코리아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옹고히 잘못 이뤄진 사회 구조로 계속하여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나만 생존하기 참 바쁘고 어려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내가 운 좋게 세월호에 안 탄 상황에 있어야 하고, 내가 운 좋게 자살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인 상황에 안 몰려야 하고, 대통령을 하더라도 노태우나 이명박처럼 재임해야지 모난 돌이 깎인다고 노무현처럼 재임하면 스스로 목숨 끊어 자살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대한민국 사회 구조 때문에 나 자신은 무한히 노력하고 운에도 적절히 기대어, 앞에 열거한 상황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이래서 대한민국 살기가 참 힘든 것이다. 그래서 헬조선이기도 하다.


집에서 해당 사건을 TV 뉴스로 접하다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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