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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민혁 Jun 07. 2016

윤창중 패션 단상

<!> 글을 읽기 전에 참고 사안: 본 글은 2015년 10월 필자 개인 블로그에 썼던 글이며, 최근 윤창중씨가 재조명받기에 한번 올려보는 글입니다. 노파심에 밝히지만 개인적으로 윤창중씨의 행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님에 확실히 선 긋습니다. <!>




글을 읽기 전 봐야 할 기사 : http://news.tf.co.kr/read/ptoday/1592911.htm

                           

한국 꼰대 문화의 최고봉인 성추행에 연루된 윤창중씨의 최근 모습 보고 뿜음과 동시에 어떤 생각이 들었다. 일단 꽤 패셔너블한 모습 때문에 그런 건데, 이 모습이 난 예전 관직에 있던 때의 모습보다 보기 좋다.


요즘 느낀 건데 한국사회는 어른이 어떤 옷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구두까지 신어야 하는지 강요하는 사회라 느꼈다. 하나같이 보면 우리네 아버지들이 후줄근하고 촌스러운 것을 보면 그렇다.


한 가지 사례로 수염만 해도 그렇다. 내가 예전 50-60년대 한국영화를 자료화면 보다 안건대, 한국도 어른에게 수염이 허용되었더라. 극 중 캐릭터에 수염이 나왔기에 가늠이 된 것.


자세히 살펴보니 멀쩡한 직장을 다니는 경우 수염이 절대 불가된 사회 분위기가 1970년대에 나온 것 같다. 그 이후 영화나 드라마 필름 자료를 보면 화이트 칼라 캐릭터에 수염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너무 한국사회만 보고 산 사람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 있는데, 성인 남자가 멀쩡한 직장을 다니려면 수염이 절대 불가된 것은 한국만의 문화다.


미국이나 구라파 쪽은 금융계 엘리트도 수염을 기른다. 물론 예술가들이 기르는 방향으로 너저분한 수염은 절대 아니다. 단정하게 빗고 관리하는 수염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스티브 잡스와 영화 아이언맨 캐릭터인 토니 스타크다. 사무직을 해도 수염이 된다는 것이 드러난 사례다. 그냥 JP모간이나 블룸버그 혹은 기타 월가의 증권사 웹사이트에서 임원 소개 페이지를 가거나 경제 관련 뉴스에 미국 금융권 직원 사진을 봐도 안다. 금융권 엘리트도 수염은 개인 취향대로 기른다.


아울러 수염만 아니라 헤어스타일이나 구두, 넥타이까지 사회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미묘하게 '진보적'일 것을 강요한다.


구두도 그냥 영화 킹스맨 요원들처럼 가죽구두로 통일시키는 엄격함이 차라리 좋겠는데, 2000년대 들어와 괴상한 궁합을 강요(...한건지 단순 유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 웬 기지 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게 만든다.


그리고 넥타이가 불편하면 얼마나 불편하다고, 넥타이 매면 꼰대처럼 취급을 해서 어느새 노타이가 대세 되어 한국 직장인을 보면 모두가 똑같은 방향성의 패션을 하게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모두가 한결같이 수염은 빡빡 밀고, 머리는 어설픈 쾌활함을 주려는 의도로 어딘가 삐쭉하고, 옷은 또 진보적으로 보일려는지 넥타이는 거부해서 노타이에 신발은 양복바지에 스니커즈가 허용되는 이상한 문화가 생겼다.


이 어설픔이 너무 싫다.


차라리 앞서 언급한 킹스맨 요원처럼 Full 정장으로 입으면 내 경직된 사회분위기가 차라리 약 빨아서 멋지기라도 할 텐데, 어설픈 진보성과 쾌활함이 가미돼 보기 흉하다.


관직에 있을 때 정통아저씨 헤어다. 포마드로 가지런히 붙이면 꼰대처럼 보일까봐, 어딘가 미묘히 삐쭉삐쭉한 스타일링을 함. 한국 사회의 패션 강요가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난 스타일.



이런 한국사회 패션에서, 위에 링크된 뉴스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성추행이란 꼰대 짓에 연루되어 변방으로 밀려난 윤창중씨 패션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 그가 저지른 과거의 행동이 꼰대 짓이고 범죄는 맞다. 헌데 오늘 기사에서 옷차림 하나만큼은 나에게 감명을 주었다.


어떤 감명이냐면 한국의 개꼰대 같은 아저씨도 변방으로 밀려나 자기 직업을 잃고 맘대로 입으니 이렇게나 패셔너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증명을 했다는 점 때문.


비틀즈 팬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소리지만, 윤창중의 단발머리와 동그란 안경을 보니 존 레논 느낌도 난다.

회색 누빔 점퍼도 꽤나 적절하고 청바지의 핏도 너무 좋다.


윤창중 과거 사진을 보니 이런 개 늙은 추한 패션 아저씨가 그 개인의 취향이 후져서(!) 저따위로 입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모든 이가 멋져 보이고 싶단 것은 인간 내면의 욕망인 것이다.


근데 이 욕망을 누르라 강요하는 게 한국의 직업, 직장, 사회의 분위기다.


이 강요가 사라진다면(윤창중의 경우 정치계 퇴출) 예전 윤창중씨처럼 꼰대처럼 옷 입는 사람도 멋져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게 너무 기분 좋다.


과장된 소감을 밝히자면 한국사회도 서로를 괴롭히는 부조리, 이유도 없고 득도 얻지 못하게 한 경직성, 똥군기와 이상한 강요 문화만 사라진다면 많은 이가 선진국처럼 리버럴하고 이모셔널 하게 바뀔 수 있는 사람들이라 다행이다 느꼈다.


아무쪼록 윤창중씨가 과거 꼰대성을 발휘해 연루된 성추행은 여전히 잘못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 패션에 국한해서는 너무 칭송하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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