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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10. 2023

딱지 인생

스티커


 
 

 맘스스테이션(Mom’s Station) 구역에 주차하면 통행 불편과 안전사고가 따르게 마련이다. 원아들 등원 시간 전에 다른 곳으로 차를 옮겨 달라고 사전 안내 문자를 보내야 한다. 대부분 안내 메시지에 응하는데 개중엔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런 주차 질서 위반 운전자에게는 벌점은 없지만 스티커 멍에가 돌아간다.


 주차 질서 위반에 따른 경고, 스티커, 일명 딱지


 통행에 방해를 주는 차량에 대한 벌칙이요, 학원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차량 운전자들의 원활한 차량 업무 수행에 따른 배려 차원이다. 그것보다 스티커 단속을 하는 주된 이유는 원아들과 그 가족들의 안전이다. 원아들의 손을 잡고 차를 태우러 나올 때 그곳을 지나는 타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원아와 그의 가족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보다 큰 아픔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맘스스테이션에서 교통 안내를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씨에 상관 않고 정해진 시간 동안 아이들과 그 가족을 살핀다. 입주민이나 배달 차량 대부분 주차질서에 협조한다.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는 운전자가 있다. 보안대원들은 이런 차량들을 가려 주차질서 위반에 따른 스티커를 발부한다.
  아침 8시경에 같이 근무하는 보안대원이 순찰을 돌고 나서 해당 지역에 이동 요청한 차량이 있다고 했다. CCTV 화면을 통해서도 확인 된다. 교통안내에 들어가기 전, 우선 주차질서 위반 차량이 있으면 딱지를 붙인다. 스티커에 차량 번호와 단속시간, 위반 내용을 적어 차량 조수석 앞 유리창에 붙인다.
 검은색 차량이다. 차 상태도 양호하다. 그런데 운전자의 마음은 비뚤어진 차바퀴처럼 일그러졌나. 주차 협조에 관한 내용까지 적어 이동요청한 지 한참이나 되었건만 옴짝달싹 안 한다. 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차량 주변에서 소리가 났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시동이 걸릴 때 나는 소리다.  

운전자가 차 안에 있는 것일까? 사실 딱지를 꺼내 위반 내용을 적을 때 차량 트렁크 위에서 적었다. 그렇다면 차주가 앞 유리창에 스티커를 붙이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당황스러웠다. 차주는 그런 내 행동을 지켜보고 차 문을 열고 나와 금방 붙인 딱지를 떼어달라고 떼쓰지는 않을까?

 딱지를 붙인 경위나 근거를 대라며 옥신각신한다면 이른 아침부터 불쾌한 일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붙인 딱지로 인해 나도 불편하고 운전자도 불편하다. “딱지를 떼어 내라! 차 유리창이 긁히거나 흠집이 생기면 변상해야 한다.” 라며 엄포를 놓으면 궁지에 몰리는 건 보안대원인 나뿐이다.
  차창 선팅이 잘 되어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차량 안에 운전자가 있나 해서 소리쳐 불러 본다.


 “차 안에 누가 있어요?”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차창이 햇볕에 반사되어 손으로 가려가면서 차 안을 살펴도 대답은커녕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알고 보니 차주가 원격으로 차 시동을 건 거였다. AI시대 아닌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쨌거나 시동을 걸었으니 운전자가 나올 테고, 운전자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그 짓을 했냐고 물을 게 뻔한 상황이다.

 딱지 붙이고 채 1~2분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붙인 스티커를 표시 나지 않게 제거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왜 하필 그 순간에 시동을 거는가. 나오려면 진즉 나오거나, 아예 늦게 나올 일이지.

 그 시간, 내게 주어진 업무,  즉, 교통 안내를 해야 하는 상황이 그 일에 시간을 많이 쓸 수 없다. 주변에서 아이 엄마들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 내가 붙인 딱지를 내가 제거해야 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하여 등을 진 채 얼른 딱지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같이 근무하는 J대원은 다른 대원이 끊은 딱지를 떼어주었더니, 그 고마움의 표시로 어느 중년부인으로부터 수필집까지 받는 복을 누렸건만, 나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내 신세만 들볶는 꼴이었다.
 스티커는 접착력이 좋아 차창에 붙으면 좀체 떼기 어렵다. 차 유리창에 먼지가 많이 끼거나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붙어 있으면 더 잘 붙어 차주가 떼어낼 때 개고생해야 한다. 그렇기에 운전자에게 이동 요청 문자를 보내면 즉각 응한다. 그런 불편이나 수고를 덜려고 주차질서에 적극 협조한다.


스티커는 접착제가 강해 떼어낼 때 요령이 필요하다. 성질이 난다고 속도를 내어 확 잡아떼어내려고 하면 뒷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리모델링하려고 벽에 붙은 벽지를 뗄 때 잘 떼어지지 않아 너저분한 종이 얼룩이 남은 것을 볼 때처럼 힘주어 서둘러 떼면 딱지 밑면에 붙은 종이가 다 떼어지지 않아 차창에 종이 얼룩이 남는다.

 밥에 뜸을 들이듯 뜸을 들여야 한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티커 귀퉁이를 잡고 조심스레 떼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종이 얼룩도 남지 않고 말끔하게 제거된다. 그런 수고를 덜려고 시중에 스티커 제거 용품이 나왔다고는 하나 써 본 사람 말을 들으면 별 효과가 없다고 들었다. 어느 누구는 비닐봉지에 뜨거운 물을 담은 채 그것을 스티커가 붙은 표면에 대고 한 참 있으면 끈적끈적한 게 눈 녹듯 녹는 것처럼 스티커가 쉽게 떼어진다고 하나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스티커를 말끔히 제거하는 요령은 알고 있었어도 그 일에 공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차에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면 그 상태로 내버려 두고 싶었다. 어차피 주차관리규정을 위반한 차량이기에 딱지를 떼어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시동을 걸었더라도, 차주가 집에서 나오는 중이라 하더라도, 주차질서를 위반한 사실은 분명하니까.
  마음 약한 게 병이다. 마음이 독하지 않아 딱지 붙이는 것도 조심하는데, 사람이 저만치서 걸어오는데 딱지를 떼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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