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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10. 2023

일 나간 남편은 오늘도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겠지

폐품 재활용

 초소엔 업무에 필요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각종 용품을 보관하거나 대원들의 옷이라도 걸어두는 캐비닛까지 갖출 건 갖춰 놓아야 한다. 그 외 벽걸이 거울이 있으면 좋고 경비원들이 도시락이나 찬 음식을 데우거나 할 때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까지 있다면 일할 맛이 날 것이다.

 개인이 가정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전부 가져다 놓지는 못하더라도 근무하면서 불편을 겪지 않게 필요한 물품이나 용품은 당연히 지급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경비원 초소가 만들어지고 관리사무소와 경비초소에 직원을 채용 배치할 때 책상과 의자 그리고 캐비닛과 냉장고는 보급된 것 같다. 그 나머지는 대원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잠깐 휴식을 취하거나 잠잘 때 요긴하게 쓰는 침대도 한쪽 모퉁이에는 버린 이의 전화번호와 폐기물 처리 접수 메모가 적힌 쪽지가 아직 붙어 있다. 입주민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생활도구와 가전제품을 새로 장만하고 일부는 쓰레기장으로 나왔을 때 경비초소에 필요한 용품들을 대원들이 고르고 골라 채워 놓은 것이다. 

그래도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은 경비 초소치곤 호텔이나 다름없다. 휴게공간은커녕 일하는 초소도 마땅치 않거니와 초소에 냉난방기 설치되지 않은 곳도 태반이라고 한다.

 전자레인지는 H대원이 구입 설치해 놓았다 하고, 옷걸이, 식탁, 협탁도 대원들이 분리수거장에서 손수 챙겼다. 의자는 내가 오면서도 몇 개가 초소로 들어왔다가 더 좋은 것이 나오면 교체되어 도로 쓰레기 분리수거장 신세가 되었다.

 지금 초소에 있는 의자 세 개 모두 J대원이 주워 온 것이다. 내가 채용되어 후문에 배치될 때 관물대에 이름을 써 붙여준. 경주로 여행할 때 근무와 휴게사간을 배려하고 1박 2일 여행코스까지 챙겨준.

 하긴 나도 한몫 제대로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16동  분리수거장에서 의자를, 102동에서는 벽걸이 거울을 챙겼다. 숙소 세면장에 샤워기를 설치했고, 화장실 청소를 위해 세제를 샀고 물휴지를 가져와 적절히 용도에 맞게 쓰고 있다.

 이른 아침 101동 주변 맘스스테이션에서 원아들을 등하교시키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돌봄 차량이 오고 갈 때 교통안내를 하는 날이었다. 남자 미화원 한 분이 해당 초소에서 각종 쓰레기 처리를 할 때 벽걸이 유리 거울을 폐기하려고 유리는 유리대로 틀은  틀대로 분리하여 처리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초소에서 쓰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그에게 다가가 인사하고는 사정을 말했다. 그 역시 용도폐기 되는 것인지라 흔쾌히 수락했다. 틀은 부숴서 버리더라도 알 거울은 한 곳에 놓아두겠다고. 필요할 때 언제라도 가져다 쓰라고.


이와 같이 대원들의 근무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는 입주한 지 채 4년 남짓 되어 초소도 번듯하고 잠을 자고 쉴 수도 있는 휴게소가 별도로 설치되어 양반이지만 일부 다른 아파트, 지어진 지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초소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쓰고 있는 형편이다. 내가 일자리를 알아보던 모 아파트 또한 경비실조차 협소하고 남루해 한겨울 그런 곳에서 어떻게 근무하고 생활할까 걱정되었다.

 타지방 어디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공간마저 없어 화장실에 작은 책상을 가져다 놓고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곰팡이가 덕지덕지한 지하 공간에 침대가 놓인 곳도 있다.

 근무할 여건을 제대로 마련해 줘야 일하는 분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거늘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라면 일할 맛이 나겠는가. 사기진작을 위해 경비업법에 명시되지 않는 업무를 할 때 그에 걸맞은 수당을 준다든지 명절 보너스를 챙겨달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경비원도 사람이다. 집에 귀가하면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빠며 손주의 할아버지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 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며 근로자다.

 사람대접 못 받는 근무 환경에서 일을 시키고는 잘했다 못했다 말할 수 있을까. 자기 부모며 남편이고 가장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곳에서 근무하게 내버려 뒀을까.

 경비원들은 오늘도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뒤지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집에 가서는 근무환경도 좋고 챙길 것 챙겨 줘 죽을 때까지 근무할 것이라고 뻥을 쳤을 경비원들을 생각하면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생활비에 보태 쓰려고, 손주들 손에 눈깔사탕 하나라도 쥐여주려고 해뜨기 전 새벽녘부터 고양이 세수하고 주섬주섬 옷 챙겨 입고 나왔을 대원들의 어깨를 감싸주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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