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택시를 못 잡겠다고 중년 부인이 도움을 청한다. 혹시 택시 업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느냐며.
이곳 일터는 시내 한복판에 있지 않고 외지여서 빈 택시일지라도 일부러 들르지 않는다. 급한 사람이 필요에 따라 전화 호출하여 볼일을 본다.
이삼십 대 젊은이들이라면 모를까 나이 꽤 먹은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내게 도움을 청한 중년 부인도 허둥대며 쩔쩔대는 모습으로 봐서는 지나가는 택시라도 잡을 요량으로 그냥 나왔다가 택시를 못 잡자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것이다.
114 안내원을 통해 업체 전화번호를 알아보던가, 아예 집에서 나올 때 택시를 호출하였으면 이런 불편은 없을 텐데, 상황을 지켜보는 나 또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중년 부인에게 핸드폰에 택시 호출 앱이 깔려 있느냐고 물었다. 집 밖에서는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데 어떻게 앱을 까느냐고 되묻는다. 와이파이가 안 돼도 모바일데이터를 쓰면 되고 앱을 까는데 2-3분이면 된다고 해도 자신 없어하는 눈치다.
내가 대신 앱을 깔아줄까 하다가 부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고, 앱을 까느라 시간을 지체하느니 차라리 내 핸드폰을 이용하여 택시를 호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목적지를 다시 물었다.
어르신이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만이라도 편히 쉬시라고 벤치에 앉아 기다리게 하고는 앱을 통해 택시를 호출했다. 호출한 시각이 10시 35분경으로 택시가 바로 오면 대학 병원 예약 시각 11시 30분까지 충분히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르기도 하다. 호출하고 1-2분 지났을까. 화면에 신호가 뜬다. 택시번호가 올라오고 운전기사 성함 및 사진까지 띄워준다. 걱정 말고 편안하게 이용하라는 문자를 받으니 고맙기까지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택시가 도착할 것이라는 안내 멘트와 함께 딩동 소리음이 다시 울린다.
하긴 나도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택시를 잡지 못해 난감해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핸드폰에 택시 호출 앱을 깔지 않은 상태였다. 그날도 도로를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직원들과 회식을 끝내고 큰 도로까지 나왔다. 나름대로 계산해 택시가 많이 다니는 전화국 사거리에서 집에 가는 택시를 기다렸다.
빈 택시가 지나가도 서지 않았다. 어인 일인가. 장거리 손님이 있어 그냥 지나친 건가. 앞 유리창에 '예약'이라는 문자를 띄우고 달리는 택시도 종종 지나간다. 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 늦은 밤 드물게 오는 택시마저 주인이 따로 있는 듯했다. 30여 분 넘게 기다려도 택시를 잡지 못했다. 추위에 떠느니 아내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순간 나만 신나게 먹고 즐겼는데 무슨 염치로 전화를 했느냐고 야단할 것 같아 꺼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다.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자 잠시 멈춰 선 택시 기사가 창문을 열고는 손님이 호출하여 가고 있다는 말을 길가에 뿌려놓고 달음박질한다. 그렇구나. 그래서....
택시도 손님들의 호출에 의해 움직인다. 그냥 다니는 택시가 없다고나 할까.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게 택시마다 호출 시스템을 설치하고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잡고 싶어도 잡히지 않는 택시를 무작정 기다렸으니 바보가 따로 없는 듯했다.
필요에 따라 앱을 깔고 버튼 몇 번 눌러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세상, 로봇이 닭을 튀겨 내고 커피를 내려 손님들을 맞는다.
호텔에 배치된 룸 서비스 로봇은 고객이 주문하면 용품을 객실까지 배달한다. 극장에 가도 마찬가지다. 매표원이 없는 시대다. 매표는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해야 하고, 타고 온 차량을 손수 등록해야 주차요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음식점에는 무인 음식 주문기인 키오스크가 등장했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고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물은 셀프입니다. 아니, 물만 셀프입니다를 넘어 모든 것이 셀프인 시대에 닿아 있다. 키오스크를 각 테이블마다 설치하고 음식을 주문하게 하는 음식점이 늘고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으면 카드 결제까지 하게 하고는 음식 값을 받아낸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끝나면 주문한 음식은 로봇이 배달한다. 말 그대로 음식점에서는 음식만 만들어 내고 주문부터 결재 배달까지 인공지능을 이용한 로봇이나 키오스크가 대신한다.
인공 지능 시대, 생활 속으로 들어온 인공 로봇,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인공지능이 갖는 잠재적 위험에 대처하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인공지능은 인류 문명사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하며 로봇 스스로 강력한 무기를 만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로봇에 이어 감정까지 드러내는 로봇이 곧 만들어지겠지만, 그런 날이 올까 봐 두렵기만 하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지능에 근접하거나 초월하는 세상이 온다면? 로봇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심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어르신 병원 진료 예약 시간 10분 전에 잘 도착했다는 알림 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