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문을 두드리더니 조금 전에 부친 거라며 장떡이 담긴 비닐봉지를 건네다. 이분은 얼마 전에도 대원들 수고한다고 빵 몇 개를 초소 안으로 들이민 적이 있다. 염색하지 않아 흰 머리카락이 그대로 드러난,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해 뒤로 넘겨 쪽진 머리를 한, 영락없는 할머니 모습이어도 내게는 천사 같은 분이다.
보안 대원들에게 빵이나 커피 같은 것을 건네기는 해도 부침개를 손수 만들어 가져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빵을 얻어먹은 뒤 친근감이 생겨 그분이 초소 앞을 지날 때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건 사실이지만, 경비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마음 놀라울 따름이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몰라 그분을 뭐라 부를까 고민했다. 그날도 바깥 근무를 마치고 와 초소에서 업무 인계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외부 방문 차량이 들어온 관계로 그 차량을 정문 초소로가라고 안내하고 나서다. 그때 장떡을 전해줬던 그분이 초소 앞에 다가오더니장바구니에서 구운 김 봉지 2개를 꺼내 건너는 게 아닌가. 손자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그 일을 계기로 김 여사라고 부르고 있다.
요즘 집에서 밥 안 해 먹고 매식하거나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김 여사는 다르다. 자기 식구가 아닌 경비원들에게 시장바구니를 열고,기름두른 프라이팬에 요모조모 맛 나는 재료를 넣어 부침개를 부치는 모습을 떠올리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해이웃 간, 통로 주민 간, 배려심마저 사라져 가는 이때, 누가 집안에서 기름 냄새 풍겨가며 장떡을 부치겠는가. 딸애가 얼마 전 전세 살던 집에서 나와 다른 집으로 옮겨가고자 했다. 그때 집을 알아보던 젊은 새댁이 벽에 못 자국이 있고, 벽지 일부가 뜯겨 있어 새로 수리해 주어야들어온다며 트집을 부리더란다. 그런 부류의 젊은이들이 친절을 베풀거나 자기 몫을 떼어 남에게 줄 수 있을까.
김 여사 같이 남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이가 더 있다. 내수 소도시에서 도넛 장사를 하는 분은 장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도넛 봉지를 정문, 후문 순번을 정해가며 돌리고 있다. 비록 팔다 남은 것일지라도 연말이나 설날 등 어느 특정한 날에만 전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초소 문을 두드린다. 후문 초소 뒤로는 아파트 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늘 입주민들의 발걸음이 있는 곳이다. 입주민분들 중엔 어느 편의점에서 샀는지 몰라도 커피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뜻한 상태로 넣어주는 분도 있다. 마트에서 한 보따리 장을 보고 오다가 바나나를 권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근무 의욕이 발동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애 둘이 얼굴에 당황한 빛을 띤 채 초소 문을 두드렸다. 사정을 들어보니 살색 코트를 걸친 여자애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면서 친구와 동행해 사정을 얘기했다. 한겨울은 지났더라도 밖은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때였다. 날씨도 차갑고 사정도 딱하여 우선 초소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는 신용카드, 지갑, 차 열쇠, 하다못해 갓난애가 쓰는 모자 등 다양한 분실물을 담아놓은 함을 보여주며 잃어버린 지갑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것저것 보여줘도 자기 것은 없는지라 실망감과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얼굴빛이었다. 하여 아파트 단지에는 이와 같은 초소가 정문에 하나 더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곳을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같이 온 여자애는 어렴풋이 아는 듯 보였다. 나는 메모지에 관리사무소와 정문 초소 배치도를 그려가며 관리사무소에 먼저 들러 사정을 얘기하고, 그곳에도 없으면 정문에도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고는 그 일을 깜박 잊고 있었다. 짜인 근무 시간표대로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초침은 저녁 10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그때 어린아이가 초소 쪽문을 두드렸다. 세대수가 많아 하루에도 수십 또는 수백의 입주민을 대하는 터라 누군가 용무가 있거나 불편한 것을 말하려 들렀을 거라 생각하고 귀찮은 마음으로 쪽문을 열었다. 누굴까?기억 저편 어렴풋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낮에 지갑을 잃어버리고초소에 들렸던 아이였다.
무슨 일일까? 이번에는 아이 엄마와 아빠와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도 보였다. 한 가족이 초소로 출동한 것이다. 아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몸을 비비 꼬면서 무언가 담긴 비닐봉지를 내게 건넨다. 고마움과 친절함에 대한 답례의 표시로 어른들이 판단하여 고른 것이라면 커피나 빵 그런 것이 들려 있어야 하는데 봉지에 담긴 건 어른의 손길이 아니었다. 아이가 내민 봉지 안에는 누가바 아이스께끼와 쫀디기 한 묶음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