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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13. 2023

탈 난 그녀의 아픔을 누가 알랴

소주는 맑은 날  마시고, 맥주는 구름 깔린 우울한  날 마신다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엔 막걸리가 제격이다.


 아내는 장떡을 부치고 장에서 사 온 취나물을  삶아 무치는가 하면 두릅을 쟁반에 담아낸다. 조금 전 편의점에서 사 냉장고에 넣어둔 막걸리를 꺼내 구색을 맞추니 이만한 식탁이 어디 있으랴.

 빗방울이 양철지붕 위에서 타닥타닥 부딪치며 내는 소리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둘 둘러 장떡을 부칠 때 나는 소리의 리듬이 엇비슷해 비 오는 날엔 장떡이 궁합이 맞다 했거늘, 이런 날 막걸리가 빠질 수 있으랴. 비 내리는 어스름 저녁 아내와 나는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이 시간, 중년 여인도 어쩌면 막걸리를 마시고 있을 듯싶다. 날씨도 그렇고 초저녁 아무도 없을 식탁의 쓸쓸함을 덜어 내려고.

 <성은 김이요>는 가수 문희옥이 애절하게 불러 유명세를 탄 노래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대상이  있을 때면, 나는 그 노래의 첫 소절 성은 김이요, 이름은 D.S를 읊조리곤 한다. 하여 내 눈에 자주 띄는 그녀를 아무개로 부를까 하다 호칭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막걸리의 첫 자를 따 '막 여사'라고 할까 하다 막 나가는 여자라고 오해를 하면 욕을 태배기로 들을까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걸 여사'라고 부르고 싶어도 얼굴 몇 번 본 것 말고 성격이 걸걸한지 수줍음을 타는 내향의 성격 보유자인지 알 수 없어 그것도 접기로 했다. 하여 막걸리에서 마지막 음절 리자를 따 '리 여사'라고 부르는 게 무난할 듯싶어 그리 부르고 있다.

 초소 앞을 들락거리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 중에 여러 번 봐도 얼굴 기억나는 사람 몇 없다. 하지만 리 여사는 그렇지 않다. 처음 본 순간부터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습득물을 주워오거나, 수고한다며 빵, 도넛, 커피 같은 음료를 건네는 사람 여럿 있어도,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내게 물 한 모금 건넨 적 없는 리 여사는 어찌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가.

 그녀는 키가 크지 않다.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보통 정도지만 파머 머리를 한 뒷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한껏 멋을 아는, 젊었을 적에는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그런 뒤태를 가진 여자다. 거리를 걷든, 커피숍을 들락거릴 때든 그녀의 분위기를 따라갈 대상을 보지 못했다고나 할까. 리 여사가 그랬다.

 리 여사는 젊었을 적엔 패셔니스트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한복이면 한복, 재킷이면 재킷, 다 잘 어울린다. 옅은 청록의 나뭇잎과 나비 문양이 새겨진 하늘거리는 한복을 입는 날이면 숲에서 나와 뜰을 날아다니는 한 미리의 나비요, 요정 같다.

 어떤 여자일까? 초소 앞을 지날  때마다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어느 날은 딸과 함께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강아지와 산책하지만 남자와 동행 외출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왜 혼자일까?

 날이 갈수록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주부들이 먹을거리를 사거나 쇼핑을 하러 식자재 마트 같은 곳을 자주 가는 것과 달리 주로  편의점에만 들른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뭘 많이 사는 것도 아니다.  간단한 음료라든지 커피가 손에 들려 있음 직한데 그마저 없는 빈손이다. 특이한 건 상의 부근이 불룩했다. 팔짱을 끼고 걸을 때  옷 안에 뭔가 숨기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금증이 풀렸다. 상의 블라우스 단추가 풀린 틈 새로 흰색 플라스틱 병이 눈에 들어왔다. 막걸리였다. 종종 그런 모습으로 막걸리를 사 품에 넣고는 초소 앞을 지나다녔던 거다. 봉지에 넣어 와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을 텐데, 나름대로 계산이 선 듯했다. 술 먹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편의점을 들락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창피스러워 숨기는가.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한다. 그 수많은 자문자답 속에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긍정의 길을 찾는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상처받고 함정에 빠지거나 동굴 속에 갇히기도 한다.  

 편의점에 들르는 날 그녀의 얼굴은 침울하다. 화장해도 핏기 없는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어디엔가 다녀올 때의 밝은 모습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걸음걸이마저 자연스럽지 않다.

 그 정도로 멋을 부릴 줄 아는 리 여사지만 얼굴에 그늘이 있다.  요즘은 딸애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런지 집에서 편의점,  편의점에서  집, 그게 다인 양 다른 곳엔 발걸음 하지 않는 듯했다. 

 얼굴 아픔이 배어 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듯 아무 생각 없이 보아 넘긴다면 탈에 가린 그녀의 아픔을 알 길이 없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요, 울어도 우는 게 아니다. 웃음을 숨기고 울음마저 숨기고 있다. 괴롭거나 슬퍼도 속울음 울며 밖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리 여사가 입은 상처는 무엇일까. 누가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을까. 아파트 뜰과 정원엔 영산홍과 철쭉이 피고 들에도 애기똥풀꽃이며 이팝나무가 꽃 잔치를 벌이고 있거늘.

 별빛마저 잠든 밤, 리 여사는 베란다 창에 몸을 기댄 채 슬픈 추억에라도 잠겨 있는 걸까. 백석 시인은 소주를 마시며 생각하길,  세상이  더러워 산골로 들어가 살고자 했는데, 리 여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탈 난 그녀의 아픔을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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