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당 Sep 15. 2023

밥의 시간

머무는 곳 뒷마당엔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 오른편에는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고 왼편에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나그네의 식탁이 궁금한가?

 언덕 위에선 달이 슬금슬금 뜰 안을 넘본다. 달빛이 교교한 밤,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 앞에 전등을 매달아 놓았지만 굳이 스위치를 올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후루룩후루룩 라면 국물을 안주 삼아 넘긴다. 술과 라면 국물이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괜한 말이 아닌 듯싶다. 아들 녀석도 취기가 오르는지 국물에 숟가락이 자주 간다. 밥 한 숟가락에 회 한 첨 얹고는 그 위에 겨자를 떠 얹는다.

 대낮부터 불던 바람이 멈추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테이블 위에 놓인 일회용 접시가 들썩이고 종이컵이 마당에 곤두박질친다. 바닷가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고 건물 뒤편도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데 바람의 심술을 당해내지 못한다. 거칠지 못해 사납다. 청주에서 남해 끝까지의 여정을 말해주듯, 인생 전반부의 격랑을 드러내듯, 바람은 어둠과 한 덩어리가 된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고락을 함께하다 보면 얼굴까지 닮는다. 그런데도 우리 내외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특히나 음식을 먹을 때면 차이가 드러난다. 아내는 된밥을 좋아하고 빵이나 부침개 등 밀가루 음식을 즐긴다. 그런 아내와 달리 나는 진밥을 찾고 밀가루 음식엔 손이 덜 간다. 내가 간식으로 과일류를 먹고 있으면 아내는 모르는 사람들의 식탁을 지나칠 때처럼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있으면 먹고 없어도 그만인 식이다. 혼자 먹기 미안해 권하기라도 하면 식탁에 놓아두라는 말로 답례하곤 한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을 때면 아내에게 듣는 소리가 있다. 짜장면을 먹는 중에는 탕수육에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며. 그렇게 순서를 정해 먹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길든 식습관인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걸 보면 괜한 소리가 아닌 듯싶다. 내 딴에는 탕수육이든 짜장면이든 음식 고유의 향과 맛을 즐기기 위한 선택임에도 아내는 나의 편향된 식사를 지적했다.

 밥과 안주를 구분하는 것도, 밥과 안주를 동일시하는 것 또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아내는 내가 순서를 정해 음식을 먹는 것은 사물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다고 여기나 보다. 아내는 밥뿐만 아니라 '밥'을 위한 시간에 묻혀 있는 내 모습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곗바늘처럼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이 눈에 보였을 테고, 작정한 일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모습을 말하고 싶었을 게다. 생활의 무미건조함과 메마름에 대한 불만을 이때다 싶어 슬쩍 꺼내놓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만 그런 게 아니다. 취미나 운동도 성격 따라가나 보다. 정적(靜的)인 것을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동적(動的)인 것을 주로 즐긴다.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모험심이 발동한다. 당구건 볼링이건 어느 하나의 종목에 만족하지 않는다. 바둑을 배우다 장기에 눈길을 준다. 헬스를 하다 등산에 빠지고, 어느 시기엔 석궁을 해볼까도 했다. 그에 비해 아내는 어느 것을 선택하면 오랜 시간 그 분야에 공을 들인다.

 봄날의 오후처럼 변덕이 죽 끓어도, 소낙비 내린 저녁처럼 사는 것이 서늘해도 시간이 흘러가다 보면 삶은 꽃이 된다. 삶은 기준점은 없어도 합일점을 위해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어떤 일이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데서 익숙해진다. 맞춰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닷바람이 심술을 부리는 사이 구름과 달이 숨바꼭질한다. 달이 앞을 치고 나가면 뒤질세라 구름이 달을 앞서간다. 구름이 달을 집어삼키면 달은 유유히 구름의 포악에서 벗어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그 경주가 재미있다. 품을 것 같으면서도 품지 않고 놓아줄 것 같으면서도 놓아주지 않는다. 풀어줬다가 품고 품었다가 풀어준다.

 삶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 아니어도 괜찮다. 구름 속에 가린 저 달처럼 드러나지 않아도 살만하다. 달의 길을 갈 수도 있고 구름 속에 묻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시간 속에서 각자 가는 길을 지켜봐 주고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아닐까 싶다. 구름이 밤하늘을 뒤덮든, 달이 뽀얀 얼굴을 내밀든 그것 또한 인생의 바다 아니겠는가.

 땅끝, 땅의 끝에 머무는 지금, 밥을 밥으로만 알았던 밥의 시간을 떠올린다. 땅 끝에 머무는 지금, 구름을 벗어난 달의 여유로움을 읽는다. 달을 놓아준다.


이전 11화 주문하는 남자와 답을 주지 않는 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