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사람들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번호표를 얻지 못했다. 건물에 들어서면 식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본 문이 또 하나 있는데, 바깥문과 안 문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곳에 있다가 다른 식당으로 옮겨갈 수도 있기에 주인은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하루를 원해도 공짜 밥은 없는가 보다. 밥 자리를 차지하려면 가마솥 안의 육수가 끓어오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것만 같다. 다리가 뻐근하고 허리가 아파도 견뎌야 한다. 따분함이 몰려오면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든가, 화장실이 급하면 뒷사람에게 자리를 맡아 달라 부탁하는 염치가 있어야 한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엿장수 가위장단에 발맞추며 흥얼거리기도 해야 밥 자리가 주어진다.
식당엔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각이라 손님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건물 밖까지 줄지어 선 것도 모자라 차량이 다니는 도로 주변까지 식객들로 넘쳐난다. 텃밭에 심을 채소 씨앗 몇 봉 산 뒤 국밥 한 그릇 먹으러 들렀는데, 식당 안의 모습이 시장 한복판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유명세를 탄 식당이나 빵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방 안에서는 연실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들도 식객들의 요구에 따라 분주히 움직인다.
밥표를 얻으려고 줄지어 선 지 삼십여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여러 무리가 빠져나갔는데도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밀물이 썰물 되어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의 물이 갯벌을 채우듯, 밥을 먹고 난 자리엔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다. 밥을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에, 기다리며 웅성거리는 사람에, 밥 먹고 나서 으스대는 사람들로 비좁은 식당이 더 좁아 보인다.
대기표 없이 기다리게 하는 주인의 배포가 만만치 않다. 집에 있는 식구들에게 국밥을 먹이려고 포장 주문해 간 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단다.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더 많은 혼란이 야기되어 순번 대기표는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벽보의 문구가 말해주듯 식당 주인은 손님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전표만 득득 긁고 있다.
꼬르륵 꼬르륵
배고픔을 달래려다 되레 지친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마저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심술 가락을 얹는다. 허기는 더해 가는데 째깍째깍 소리 내어 운다. 흥을 돋우는 굿거리장단이라면 모를까,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신경만 곤두서게 한다. 기다리다 지쳐 볼멘소리를 내자, 등 뒤에 있는 사람이 나를 위로하듯 말을 걸어온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여인도 남자의 성화에 못 이겨 밖으로 떠밀려나가는가 하면, 또 다른 중년 나이의 부부는 의견일치를 보았는지 식당 밖으로 등을 돌린다.
가진 자의 여유랄까. 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 중에는 트림하거나 요지로 이빨을 쑤시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병원에서 진찰받기 위한 예비 단계로 의사가 환자들의 불편한 신체 부위를 청진기로 훑듯 밥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을 훑으며 홀을 빠져나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줄 서기 하던 불편이나 짜증은 온데간데없다. 국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는 희열감을 드러내며 무대에서 퇴장한다.
한참을 지나자 내게도 밥 자리가 주어진다. 주문한 국밥이 식탁에 놓인다. 사냥꾼이 목표물이 시야에 들어오면 그 목표물을 향해 화살 시위를 당기듯, 나 역시 식탁에 놓인 국밥 그릇에 순식간에 반응한다. 사냥꾼의 품에서 떠난 화살촉이 들짐승의 몸뚱이로 향할 때처럼 본성을 드러낸다. 뚝배기에서 국물을 떠 넣느라 숟가락을 연실 달그락거리고, 국그릇을 집어 든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짭짭 쩝쩝, 쩝쩝 짭짭
밥을 떠 넣는다고 해야 하나, 목구멍 속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는다고 해야 하나. 턱이 위아래로 요동치고 볼마저 실룩샐룩 움직임을 반복한다. 국밥을 떠 넣는 사람들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식욕이 돋는가. 숟가락에 연실 고기 첨을 얹고 국물을 들이켠다. 입 주위가 벌겋게 물들어가는 것아랑곳하지않고 깍두기를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때를 넘긴 시간이라 그렇기는 해도 국물의 뜨거움마저 괘념치 않는다. 먹는다기보다 퍼 넣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오늘의 식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