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부부지간이라도 어떤 일로 고민하는지 알아채기가 만만치 않다. 꽃을 꽃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 꽃향기가 그윽하다 한들 꽃으로 보이겠는가. 되레 상대방은 앞에 놓인 꽃을 보며 옛 시절의 아픔에 젖거나, 자신의 처지가 꽃보다 못하다며 흐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와 나는 오늘도 사소한 주문에서 의견이 갈린다.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온 때가 막 오후 4시를 넘은 시각쯤이었다. 아내는 출출한지 뭐라도 먹고 싶어 한다. 그 물음에 나는 때가 되지 않았는데 집에 가 먹으면 안 되느냐며 되묻는다. 이런저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아내의 의견을 따른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수많은 이름을 부여받는다. 나 또한 누군가의 아들이요, 누군가의 남편이며 가장이기도 하다. 그렇게 관계를 맺어가며 구성원과 연결된다. 관계의 지속 속에 상대방을 알아간다. 하지만 안다 해도 얼마나 알며, 아는 것 또한 얼마 되지 않음을 알고는 놀란다. 모든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도 아닌, 벼룩의 눈곱만큼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알고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 되돌아보게 한다.
아내는 메뉴판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내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어 기다리고 기다린다. 하긴 나도 별다르지 않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훑어보는 것도 모자라 색다른 음식은 없을까 하여 주변 사람들의 식탁으로 고개를 돌린다. 둘이 먹거나 여럿이 있거나 공통분모를 찾는 게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어느 지역 식당에서는 ‘아무거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할까. 나는 느려지는 주문이 미안해 단발머리를 한 종업원의 얼굴에 미소를 보낸다.
음식만 아니라 여행지의 선택도 별다르지 않다. 오늘처럼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 자유롭긴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매번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설 수 없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목적지를 미리 봐 둬야 한다. 그 길이 멀든 가깝든, 떠남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아도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춰 놓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그럼 그렇지. 꼭 내가 나가자고 해야 나가.”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아무거나’ 먹자면서도 먹을 것을 결정하지 못해 갈등하는 음료수 광고가 눈길을 끈다. 남자애는 여자애에게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스무고개 넘듯 주문하고 여자애가 답한다. 그 광고는 요즘 젊은 세대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해 재미있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파스타?(면 말고, 면 말고 아무거나). 피자는 어때?(피자는, 음, 오빠 앞에서 예쁘게 못 먹잖아!). 그러면 빠삭빠삭한 돈가스 먹을까?(돈가스 말고 아무거나). 그러면 짬뽕?(매워). 감자튀김?(목 막혀). 카레?(어제 먹었지~). 초밥?(아이! 지겨워), 청국장?(냄새~ 배), 갈치조림?(불쌍~해), 추어탕?(무서워) … 아이 몰라, 몰라 아무거나….”
남자는 겉으로는 웃지만 웃는 게 아니다.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어도 웃어넘긴다. 주문하는 남자와 답을 주지 않는 여자! 종국에 남자애는 짜증이 나는지 여자애의 입을 막으며 광고는 막을 내린다. 광고의 노림수는 ‘하루하루 일상이 답답할 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게 이것이다.’라며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한다.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절망하지 말라며 손을 내민다. 노력에 따른 대가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남자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광고 속의 일문일답(一問一答)하는 남자만 속이 탈까! 가정에서도 남자의 역할은 늘어나는데 대우는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바깥에서 당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지내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빗발치는 요구에 맞서지 못하고 쩔쩔맨다. 가장은 키에 담겨 까불리는 곡식처럼 가족 구성원의 말발 따라 춤춘다. 농부의 손길에 의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다 버려지는 곡물의 쭉정이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햇볕과 물기를 잉태하며 몸집을 불린 시간의 대가를 구하기는커녕 알곡으로 남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욕구는 가슴속에 넣어두고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휴일에 조용히 쉬고 싶다는 갈망은 혼자가 되어서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초췌해지는 모습에 가족들이 기운을 잃을까 봐 세면장으로 향한다. 샤워부스에서 뜨거운 물을 쏟아낸다. 푸석푸석한 얼굴이며 헝클어진 머리를 원 상태로 돌린다. 가슴에 담아두었던 무거움을 잠시나마 덜어낸다.
나이 들어갈수록 약해지는 게 남자라지만 그래도 살만하지 않은가. 오늘도 '아무거나’라도 한 건 하려고 아침을 맞는다.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