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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Oct 23. 2023

불씨는 이미 지펴져 있다

 나라의 심장인 숭례문이 불탔다. 낙산사도 화염에 휩싸였었다. 대구지하철이 검은 연기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었고 씨랜드 사고의 피맺힌 절규도 보았다. 성수대교가 가라앉았으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것 말고도..... 지금은 세계 곳곳화염에 싸여 있다. 지구촌이 불탄다. 화재 현장, 남 일 아니다. 곧 겨울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절규했다. 통곡에 가까운 피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소방 대책을 마련하고 방재 시스템을 점검하고 불탄 현장의 원인을 규명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벌써 그 사건을 역사 속으로 묻어두려 하고 있다.  화마(火魔)가 국토의 심장부를 훑고 갔는데도 '그런 일이 있었어?' 하는 무관심한 자연인으로 이미 돌아와 있다. 불에 탄 현장을 눈물로 가리고 불낸 사람을 응징하며 난리법석을 떨 잊힌 지 오래다. 거리에서 연일 각종 흉악한 범죄가 벌어지고 살인 사건이 난무해도 그저 '난 아니야', '내 일 아닌데' 하며 나 몰라라 하는 안일한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네들이다. 아이 우유 먹일 돈을 벌지 못해 매장에서 우유를 훔치다 들킨 젊은 아녀자와 죽어가는 부모에게 심장을 떼어주려 해도 그놈의 돈이 없어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자식들의 고충을 나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재해(災害) 또한 참담하며 고통스럽기에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대대손손 내려오는 찬란한 역사의 현장을 잃은 슬픔을 알기에 우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나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왜 직장에 출근하면 그리 마음을 바꾸는지 알 수가 없다. 집에서는 가스코크를 살피고 수도꼭지를 잠그며 형광등 불을 끄느냐고 야단을 하더니만 사무실에만 오면 마음이 느슨해지는가. 내 집에서와 같이 살피며 조심하는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철면피가 다.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나는 달라 '하고 말할 사람 얼마나 되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뒤돌아보자. 이러지는 않는지.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고 난 뒤의 사무실. 서류를 정리하고 떠난 현장은 참으로 놀라 자빠질 수밖에 없다. 컴퓨터 모니터 불이 깜박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전원 차단 스위치를 끄지 않아 프린터기가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자기가 쓰던 컴퓨터마저 끄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급하다 한들, 설령 출장을 나가 귀청 하지 못할 사유가 있다 한들 당사자나 옆 사람이나 무관심은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최종 화재 점검을 했다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복사기며 파쇄기는 내 소관 아니라는 듯 방치돼 있다. 사무실도 대낮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불이 환하다. '모르쇠' 현장의 전형이다.

 화재! 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외면하고 방치하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 화재를 부르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귀중한 재산을 고스란히 내주는 피해를 알고도 남을 텐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에 빠져 있다. 그것은 공동체 의식이 없고 주인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내 것만 챙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뭐든지 대충대충, 어떤 일이든지 '누군가 하겠지' 하는 무관심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화재의 원인은 관찰을 소홀히 하고 방치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전선이나 전열기구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 곯고 곪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있을 수도 있다. 소화기 충약 상태를 확인하고 화재 탐지기를 체크하고 대피훈련은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뀐다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겠지 하는 무관심의 행태가 몸에 배기 전에 내 직장을 내 집과 같이 살피고 돌아봐야 한다.

 가장 행복한 사회는 겉모습의 치장보다도 안전성이 갖춰진 곳이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열심히 뛰놀 수 있는 그런 곳. 꽃을 피우기도 전에 지는 생명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하나하나 챙기고 대비하는 사고(思考)의 전환이 필요하다. 좋은 건축 자재를 쓰고 외형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시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삶의 현장의 안전이다. 화재 예방과 안전에 관한 기본 지식과 훈련이 일상화되고 수시로 점검을 하고 조심하는 행동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안전의식이 몸에 배게 해야 한다.  

 해마다 불조심 예방 포스터와 표어를 공모하고 화재 예방과 대처에 필요한 교육을 하지만 형식에 그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어쩌다 하는 소방 방재 훈련에 참가해 보면 소화기 사용법도 몰라 절절매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에서 화재 등 재난의 위험에서 대피하고 탈출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집에서나 학교, 직장 어디든 간에 실제로 불이 났을 때 소방기구들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이지만 언제나 잘 대비하고 준비하기에 많은 피해를 입지 않듯이 잘 되고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 훈련을 하여야 한다. 서로 밀치고 떠밀다 보면 넘어지고 밟혀 크나큰 인명 사고를 부를 것이다. 몸에 배지 않으면 평소 움직이던 대로 습관이 되어 우왕좌왕하며 혼선을 부를 것이다.  

 겨울철이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고 사용량과다로 부하가 걸리기도 하니  살펴보고 전기 배선의 두께가 얇은 것은 적당한 것으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사용하지 않는 전기기구나 플러그를 집에서와 같이 뽑는 것을 일상화하고, 과열, 누전, 합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치밀한 시설 점검을 하여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 내가 움직여 가는 공간이 화재에 노출되어 있는지 유심히 지키며 관찰해 볼 일이다. 내 것이건 아니 건, 길 가다가 LPG 프로판 가스 호스가 노출돼 있다면, 전깃줄이 늘어져 있다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전기 플러그에 여러 개의 전열 제품을 꽂아 사용하는 것을 본다면 넌지시 그 무서움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정책을 주관하는 부서는 물론 모든 국민이 같은 마음이 되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한다. 시설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살피고 주의하며 챙겨야 한다.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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