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착륙 시간
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유독 길다. 마침내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쪽은 "정말 다행이네요"라며 숨을 고른다. 다른 한쪽은 곧장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 정도 검사면 과했던 거 아닌가요?" 안도보다 비용이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들이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난기류에 기체가 크게 휘청이면 누군가는 의자 손잡이를 꽉 잡으며 생존을 기도한다. 무사히 착륙한 뒤, 한쪽은 "살았다"며 웃지만 다른 쪽은 "이런 상황을 겪게 한 항공사는 책임이 없나"를 먼저 따진다. 소송 끝에 돈을 되찾은 뒤에도 "원래 내 돈인데 수임료가 아깝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비용은 발생했고, 고생은 실재했다. 하지만 그 계산서가 마음의 종착지가 되면 곤란하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기분은 늘 '손해'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 세상을 거래 장부처럼 보는 시각,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짙은 불안이다. '언제든 내 것을 뺏길 수 있다'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은 무사히 지나간 일을 봐도 끝내 안심에 닿지 못한다. 안도의 자리에 의심과 억울함이 먼저 앉아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예쁜 말이 아니다. 그건 불안이 과열될 때 작동시켜야 하는 브레이크다. "돈만 썼다"로 닫을 수도 있는 일을 "그래도 안심은 했다"로 마무리 짓는 건, 내 마음의 에너지 효율을 관리하는 지극히 실무적인 장치다.
"다행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습관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선택이다.
세상을 무조건 믿겠다는 순진한 선언이 아니다. 최소한 오늘의 안전망은 작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승리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덜 지치며 살아내야 한다. 그 정도의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사람은 무너지지 않고 다음 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억울함으로 채워진 장부에는 미래가 담길 틈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