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공정함’이라는 환상
법은 거미줄과 같다.
고대 스키타이의 아나카르시스가 이 비유를 처음 던졌을 때, 그는 아마 법의 '무력함'보다는 '비겁함'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약자는 걸려 꼼짝 못 하지만, 강자와 부자는 유유히 뚫고 나가는 그 끈적하고 기만적인 그물망 말이다.
현장에서 사람과 조직의 문제를 경험하다 보면 이 오래된 비유가 아프게 다가올 때가 많다.
아일랜드의 문인 골드스미스는 법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부자가 법을 지배한다고 꼬집었다.
사회계약론을 말한 루소조차 법이 재산가에게는 방패가 되지만 무일푼인 자에겐 그저 괴로움일 뿐이라 덧붙였다.
시대가 변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들 하지만,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그물이 누구의 무게를 견디고 누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지 지켜보는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발자크는 이를 더 노골적으로 풍자했다. 법이라는 거미줄은 작은 파리는 붙잡아 매달지만, 큰 파리는 보란 듯이 뚫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망'의 속성도 결국 이 지점에 닿아 있다. 그물은 본래 죄인을 잡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그물코가 얼마나 촘촘한지 혹은 얼마나 성긴지에 따라 정의의 유효기간은 달라진다.
문제는 그물의 촘촘함이 대상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데 있다. 작은 잘못에는 가혹할 정도로 촘촘해지던 그물이, 거대한 범죄나 권력 앞에서는 속절없이 허점을 드러낸다. 법의 공정성과 실효성은 단순히 법조문의 완결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그물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저항력'으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된다.
제도가 사람을 소외시키고, 규칙이 강자의 편의를 위해 복무할 때 조직의 근간은 흔들린다.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대는 작은 파리의 날갯짓을 외면하면서 시스템의 정의를 논할 순 없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무수한 규칙과 법들, 그 촘촘함의 기준이 과연 공정한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