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를 잃지 않는 용기
살다 보면 마음에 얇은 흠집 하나 남기고 지나가는 시선을 자주 만난다.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모를 애매한 눈길, 근거 없는 오해, 유독 날카로운 평가들. 그런 날이면 혼자 문장을 되감아 본다. 말투가 문제였나, 표정이 과했나, 아니면 그날의 선택이 잘못이었나.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 한다. "내가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나." 이 문장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속절없이 마른다. 타인의 감정까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결국 나를 갉아먹는 셈이다.
조직에서 문제를 명확히 정리해 준 사람이 가장 먼저 미움받는 장면을 자주 본다. 팀을 위해 던진 직언이 다음 날 "말이 세다"는 뒷말로 돌아온다. 누군가의 실수를 조용히 덮어줬더니, 고마움 대신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가 돌아오기도 한다. 선의로 한 일이 흠이 되고, 진심을 증명하려 애쓸수록 체력만 빠진다. 성과를 내도 "운이 좋았다"는 한마디로 정리되는 순간, 마음의 기준선이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질문을 바꿨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가 아니라, "내가 이걸 왜 했지?"라고 내 쪽을 먼저 본다.
비판을 들었을 때 즉시 자기 검열로 들어가는 대신, 한 번 더 필터를 거친다. '사실인가, 아니면 상대의 감정인가.' 이 질문 하나가 상대의 불안이 내 책임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아준다. 사실이라면 고치면 그만이고, 감정이라면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를 지키는 방식은 고를 수 있다. 남이 써준 기준이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양보 가능한 선인지 분명해질수록 타인의 말은 뼈에 박히지 않고 튕겨 나간다.
나를 진심으로 봐주는 사람, 내가 흔들릴 때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고 말해줄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세상의 소음은 멀어진다.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그 거울이 늘 정직할 거라고 믿는 건 위험하다. 누군가는 내 진심을 놓치고, 누군가는 내 선의를 의심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살아온 시간을 통째로 부정할 이유는 없다. 소문은 빠르지만 내 기준은 더 오래간다. 타인의 평가는 참고 자료일 뿐, 내 가치를 결정할 권한은 내 안에 있다. 이걸 놓치는 순간, 우리는 남의 기분에 월세를 내며 살게 된다. 나는 더는 그 삶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내 선택이 내 양심 앞에서 떳떳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