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나 법왜곡죄 신설은 재판의 독립을 흔들 수 있다는 경고.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경고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이 사법부를 믿지 못하게 된 건 어느 날 입법 하나가 튀어나와서가 아니다. 절차, 속도, 예외에 대한 의문이 오래 쌓였고, 이제는 작은 흔들림도 크게 보이는 상태가 됐다. 독립이 ‘원칙’이 아니라 ‘방패’처럼 들리기 시작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란전담재판부나 법왜곡죄 같은 입법엔 나는 동의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취지가 무엇이든, 권력이 재판에 손을 넣는 통로가 될 가능성은 늘 남는다. 그런데 사법부가 “독립”만 말하면 논점이 엇나간다. 질문은 ‘국회가 과하냐’가 아니라 ‘법원이 왜 이 지경까지 왔냐’다. 입법이 잘못된 처방이라면, 사법부는 내부에서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먼저 내놔야 한다. 자정이 없으면, 외부의 거친 처방은 계속 올라온다.
올해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25부의 구속취소 결정은 ‘예외’라는 단어를 키웠다. 기준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즉시 묻는다. 왜 이런 계산이 가능했나. 다른 사건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되나.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도 비슷하다. 결론이 무엇이든, 선거 직전에 출마 자격을 흔들 수 있는 사건을 그 속도로 처리한 절차는 불필요한 의심을 남겼다. 의도가 없었다면 더더욱, 그 시점의 선택을 설명할 책임이 생긴다. “법과 양심”이라는 말만으로는 이제 부족하다.
내란 재판은 더 민감하다. 길어질수록 ‘정의가 지연된다’는 인식이 커진다. 속도는 편의가 아니라 정의의 일부다. 전두환·노태우 재판은 기소 뒤 1심까지 8~9개월, 대법원 확정까지 16개월 정도로 결론이 났다. 지금처럼 시간을 흘려보내고 “독립”을 내세우면, 그건 원칙이 아니라 방패로 보인다. 재판의 독립은 손대지 말라는 면허가 아니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더 엄중하고 더 신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보이도록 운영돼야 한다.
책임을 몇 사람에게만 돌리면 문제는 작아 보이지만, 불신은 그대로 남는다. 대법원은 집단적 숙의의 체계다. 중요한 결정이 사회에 던질 파장을 통제하지 못했다면 체계의 실패다.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든, ‘왜 이렇게 진행했는지’가 보이지 않으면 결국 불신이 남는다.
지금 필요한 건 “독립”이라는 선언이 아니라,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다. 내란 사건을 엄중하고 신속하게 처리해 특별입법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것, 예외를 줄일 내부 기준을 정교화하는 것, 고비마다 국민이 이해할 언어로 설명하는 것. 국회 증언을 거부할 수는 있어도,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재판의 독립은 법관의 권한을 지키는 구호가 아니다. 공정하게 재판받을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을 사법부가 먼저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