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강도가 아니다

사실, 회사에서 '끈기'라는 말만큼 가성비 떨어지는 단어도 없다.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라는 기대는 보통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라는 냉소나, "잘하니까 일 좀 더 해"라는 업무 폭탄으로 돌아오기 일쑤니까.


평가는 늘 박하고, 보상은 내 노력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주변에선 말한다. 적당히 해, 어차피 월급은 똑같아. 한 번 잘하면 계속 잘해야 해서 싫다는 사람들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그런데 문득 오그 만디노의 문장 하나가 마음을 툭 건드렸다.


"나는 큰 산을 조금씩 깎아내리는 빗방울과 같아지리라. 한 번에 벽돌 한 장씩, 나의 성을 쌓아가리라."


​내가 그동안 억울했던 건, 내가 쌓은 벽돌을 남의 집 담벼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회사라는 남의 성을 위해 내 시간을 갈아 넣는다고 생각하면, 벽돌 한 장이 천 근처럼 무겁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틀어보자. 평가는 그들의 몫이지만, 그 과정에서 손에 익은 숙련도와 단단해진 근육은 오롯이 '나의 성'이 된다.


​중용에는 '인일능지 기백지(人一能之 己百之), 인십능지 기천지(人十能之 己千之)'라는 말이 나온다.


남이 한 번에 해내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 이건 숭고한 도덕책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운(運)은 예고 없이 오지만, 그 운을 낚아채는 건 평소에 백 번, 천 번의 빗방울을 떨어뜨려 본 사람뿐이다. 남들이 한두 번 해보고 "이건 안 되네"라며 손을 놓을 때, 미련하게 백 번을 채워본 사람만이 바위가 뚫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목격한다. 그때 생기는 구멍은 타인이 평가하는 점수가 아니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실체'가 된다.



​회사생활은 어쩌면 거대한 산을 깎아내는 일과 닮았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은 의미 없는 삽질처럼 보이지만, 그 빗방울 같은 시도가 누적되어 산의 모양이 바뀌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남들이 "그거 한다고 돈 더 줘요?"라고 물을 때, 아니, 돈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올 내 운을 그릇에 담으려고 하는 거라고.


​오늘도 나는 출근해서 벽돌 한 장을 얹는다. 평가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일지 모르고, 상사의 칭찬 같은 건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어제보다 조금 더 정교해진 나의 손놀림과, 조금 더 단단해진 내 성벽의 감촉을 믿을 뿐이다. 남들이 한 번 할 때 나는 백 번을 한다. 그 지독한 반복이 나를 평범함의 늪에서 건져 올릴 유일한 밧줄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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