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질감

고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직장에서 25년을 버티며 배운 건, 세상에는 생각보다 '단단해서 망가지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흔히 리더십을 강철 같은 의지나 바위 같은 결단력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목격한 소위 '강한 상사'들은 대개 고무줄 같았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때는 위협적이지만, 한계점을 넘는 순간 끊어져 버린다. 끊어진 고무줄은 자신만 다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의 눈을 때리기도 한다.


나는 리더가 차라리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그 장난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액체도 아닌, 이름조차 기묘했던 '액체괴물' 말이다.



그 장난감은 참 희한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스르르 흐르다가도, 갑자기 꽉 움켜쥐면 단단하게 저항한다.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아도 그 틈새를 다 메우며 적응하지만, 결코 제 질량을 잃지는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배역은 이미 찼으니 리더는 그저 리더라는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면 그만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판사의 역할을, 변호사가 변호사의 역할을 하듯 조직 내에서도 팀장은 팀장의 배역이 있다. 사원, 대리처럼 실무에 매몰되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거나, 반대로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뒷짐만 지고 있다면 그건 캐스팅 미스다.


팀장이라는 배역을 수행하며 내가 가장 경계하는 건 '찰흙'처럼 굳어버리는 것이다. 찰흙은 굳으면 모양은 번듯해 보일지 몰라도, 작은 충격에 여지없이 갈라진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원래 우리 바닥은 이래" 같은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할 때, 리더의 유연함은 화석이 된다.



최악의 상사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은 대개 정보와 권한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후배가 치고 올라오는 게 두려워 끊임없이 견제하고 누른다. 이건 리더십이 아니라 생존 본능일 뿐이다. 반면 말랑한 리더는 후배가 올라오면 그 흐름에 맞춰 몸을 내어준다. 통로가 되어주고 기반이 되어준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위기에 처해 강한 압력이 가해지면, 그 순간 누구보다 단단하게 뭉쳐 방어막이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말랑하게 굴면 '호구'가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액체괴물은 부드럽지만 결코 찢어지지 않는다. 칼로 내리쳐도 그저 잠시 갈라졌다 다시 하나로 합쳐질 뿐이다. 리더가 보여줘야 할 배려심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어떤 공격도 흡수해 버리는 압도적인 완숙함의 표현이어야 한다.


조직원들에게 리더는 '우산'이자 '소파'여야 한다는 말, 참 공감 가는 비유다. 비 오는 날 팀원들이 젖지 않게 막아주는 우산은 바람에 따라 적당히 휘어질 줄 알아야 꺾이지 않는다. 지친 몸을 누이는 소파는 앉는 사람의 체형에 맞춰 모양을 바꿔줘야 편안함을 준다. 리더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법은 목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목의 긴장을 풀고 그 무게를 온몸의 탄성으로 받아내는 데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매일 아침 출근길에 다짐한다. 오늘 마주할 수많은 갈등과 예상치 못한 변수들 앞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말랑할 수 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팀의 무겁고도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불필요한 고집은 흘려보내고 지켜야 할 원칙만은 끈적하게 유지하는 것.


완벽한 정답을 가진 '강철 상사'보다는, 팀원들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말랑한 그릇'이 되기로 한다.


굳지 마라.

갈라지지 마라.


그저 흐르고 뭉치며 나만의 형태를 만들어가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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