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삶의 터전이지, 내 존재의 전부가 아니다
연말을 앞둔, 어제저녁, 취업을 앞둔 청년들과 마주 앉았다.(나는 청년들하고 관계하는 몇 개의 단체와 어울림이 있다.) 졸업이라는 벼랑 끝에 선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보다 불안이 짙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라는 내 물음에 돌아온 답은 서글펐다.
"하고 싶은 건 돈이 안 된다고 다들 말려요"
"음악이 꿈이었는데 이젠 그냥 아무 회사나 붙여만 줬으면 좋겠어요".
농담처럼 “저는 요즘 뛰는 가슴이 없어요”라고 던졌을 때, 모두가 웃었다. 그런데 웃음이 지나가고 남은 침묵은 묵직했다. 대학 1학년인 딸은 꿈을 따라 웹툰애니메이션 전공을 택했고, 나는 그 길을 응원하며 지원한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여러 종류의 힘듦은 또 다른 이야기다. 중3 아들은 심한 사춘기와 함께, 너무도 갑작스럽게 자신의 꿈이 유튜버라고 말했다. 솔직히 골치가 아프다. 나는 “인생은 실전”이라고 말하며, 현실이 가진 무게를 조심스럽게 건네기도 한다. 이처럼 꿈을 추구하는 자신과 생존을 요구하는 현실 사이에서, 그들은 이미 죄책감을 학습하고 있었다.
"나를 지탱한 건 거창한 꿈이 아닌 한마디였다"
그들을 보며 25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법률사무원이라는 이름표를 처음 달았을 때, 나 역시 끊임없이 자문했다. '이 일이 내 천직일까?', '나는 이 거대한 시스템에 어울리는 부속품인가?'.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그 속도에 치여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이 수두룩했다. 나를 일으킨 건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어느 날, 집행현장에서 조심스럽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고객의 목소리였다. 나로 인해 마음이 편해졌다는 그 짧은 말 한마디. 대단한 실무가라서가 아니라, 그저 성실히 누군가의 고통을 들여다봐 주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가 쓰임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직업은 정체성이라는 감옥"
우리는 직업을 곧 정체성으로 여긴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이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요?"와 동의어가 된 시대다. 하지만 직업이 나를 모두 규정해 버리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좁은 틀에 가두게 된다. 나는 대형 로펌의 법률 사무원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부모이고, 역사와 철학을 좋아하고 동경하며 어설프게나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직업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가슴 뛰는 일을 좇다가 가슴이 안 뛰면 큰일"이라고 경고했다. 인간의 감정은 관성보다 변덕에 가깝다. 사랑은 늘 한결같지 않고, 일에 대한 권태와 의심은 필연적이다.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삶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업은 직업일 뿐'이라는 선언은 우리에게 체념이 아닌 자유를 준다. 직업에서 얻지 못한 만족과 정체성은 삶의 다른 구석에서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아내는 모든 길은 가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탁월함(Arete)'을 숭상했다. 내 손에 익은 일을 묵묵히 해내며 타인에게 기여하는 것, 그 안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존엄은 충분히 증명된다. 나는 내 직업에 감사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 더 큰 해방감을 느낀다. 내가 로펌에서 대단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내 행복의 뿌리는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자라날 수 있다.
이상을 좇는 청년들의 불꽃을 여전히 응원한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의 전부는 아니라고. 직업은 삶을 가꾸는 터전이지, 당신의 영혼을 가두는 창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직업적 성공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 삶의 다른 얼굴들을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을 좇는 청춘이든, 현실을 버텨내는 라떼든, 새해 병오년에는 그냥 다들 아프지 말고, 마음 덜 닳고, 먹고사는 걱정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가끔은 이유 없이도 웃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