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이라는 거품이 꺼진 뒤 남는 것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날카로운 바람을 맞는다. 25년 넘게 법률 실무의 현장에서, 혹은 조직의 관리자로 수많은 관계를 조율하며 깨달은 사실 하나는 세상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정교하게 일을 처리해도, 누군가는 그것을 시기하고 누군가는 오해의 렌즈로 내 진심을 난도질한다. 모든 이에게 박수받으려 애쓰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설정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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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평가는 때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앞에서는 웃으며 성과를 치켜세우다가도, 뒤에서는 날 선 험담을 쏟아낸다. 내 행동은 맥락 없이 잘려 나가 오해의 도마 위에 오른다. 이런 순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 것이다. "나는 내 원칙에 충실했는가. 내 양심은 이 결과 앞에 떳떳한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타인의 시선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일뿐이다.


감정의 파고가 높을수록 차갑게 가라앉아야 한다. 누군가 나를 비난할 때, 그 화살을 곧장 심장에 꽂을 필요는 없다. 잠시 멈춰 서서 그 비난의 성분을 분석해 본다. 그것이 합당한 비판인지, 아니면 그저 그들의 결핍이 만들어낸 투사인지. 대개의 오해는 내 허물보다는 상대의 뒤틀린 시선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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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계가 틀린 말에 마음을 낭비하는 건, 읽지도 않을 쓰레기 편지를 붙들고 밤을 지새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감정 소모는 줄이고,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 법률사무원으로 살며 익힌 이 습성이 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가 되었다.


폴로니우스는 햄릿에서 말했다. 무엇보다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고. 그러면 낮이 밤을 따르듯 누구에게도 거짓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말은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훈계가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라는 뜻이다.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들면 삶은 피곤해지고 중심은 흔들린다. 하지만 내 안의 기준이 바로 서 있으면 외부의 소음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음이 된다. 헤르만 헤세가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결국은 그것이다. 나라는 중심이 무너지면 세상 그 무엇도 나를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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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지만, 그 거울은 흔히 일그러져 있다. 내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해명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중요한 건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상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서 있는 실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길을 걸어왔는지,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부끄럽지 않았는지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면 타인의 오해쯤은 기꺼이 견뎌낼 수 있다. 소음 속에서도 내 나직한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 그 무심한 용기가 비로소 나를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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