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끝의 칼날, 자본의 프레임

100년의 데자뷔

역사는 거울이다.


100년 전 조선 문단의 천재 김명순과 2024년 K팝 산업의 핵심 인물을 나란히 놓으면, 기묘할 정도로 닮은 구석이 드러난다. 물론 두 사람이 처한 시대와 맥락은 다르다.


김명순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진 사회적 낙인이라는,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는 부당함의 사례다. 다른 한쪽은 경영권, 계약, 자본이 얽힌 복합적 사안이며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이다. 그 차이는 인정 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공적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여성에게 비합리적 프레임을 씌워 지우려 했다는 점에서 그 패턴은 섬뜩하리만큼 닮았다.


김명순. 1896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 여성은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자 최초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이었다. 평론가, 극작가, 기자,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국내 최초로 번역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1912년 진명여학교를 전교 차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그녀의 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열려 있는 듯했다.


그러나 1915년 7월, 도쿄 아오야마 연병장 근처에서 일본군 소위 이응준에게 강간을 당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렸다. 김명순은 당시 19세였다.


충격에 투신자살을 시도했고,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오히려 피해자인 김명순이 학교에서 졸업생 명부 삭제 처분을 받았다.


언론은 김명순이 이응준을 짝사랑하다 실연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도했다. 가해자 이응준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훗날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랐다. 피해자는 낙인찍히고 가해자는 출세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잔혹한데, 조선 문단의 남성 지식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먼저 선봉에 나선 건 카프(KAPF) 소속 평론가 김기진이었다.


그는 1924년 잡지 《신여성》에 〈김명순 씨에 대한 공개장〉이라는 글을 발표해 성폭행 피해자인 김명순을 향해 "성격이 이상하고 행실이 방탕하기 때문"이라며 공개적으로 인격을 짓밟았다.


소설가 김동인은 1939년 소설 《김연실전》에서 김명순을 모델로 한 인물을 성적으로 문란하고 악독한 여성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 하나로 김명순은 우리 문학사에서 '스캔들로 유명했던 여류 문학가'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 우리가 '어린이의 벗'으로 추앙하는 방정환이 있다. 방정환은 자신이 관여하던 개벽사 발행 잡지 《별건곤》에 "김명순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고도 처녀 행세한다"는 전혀 근거 없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기사는 1927년 4월 22일 자 《조선일보》 석간에도 보도된 실제 사건이다.


김명순은 방정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법원은 김명순의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연재를 중단시켰다.


방정환은 경찰서에 구금되어 취조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김명순이 친구의 아이를 입양하자, 방정환은 다시 《별건곤》에 "김명순이 혼외자로 낳은 아기의 성을 무엇이라 붙여야 할지 몰라 애쓴다"는 비방글을 투고했다.


전영택이 쓴 《김탄실과 그 아들》은 이 아이가 사생아가 아니라 두 돌 된 아기를 입양한 것이라고 명시하며 방정환의 주장을 일축했지만, 한번 퍼진 유언비어는 되돌릴 수 없었다.


2023년 EBS 《다큐프라임》 '여성 백년사' 편에 따르면, 방정환의 허위 악성 기사는 김명순이 한국 문단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방정환은 김명순 외에도 잡지에 '은파리' 등의 익명으로 활동하며 신여성에 대한 비방 글을 수시로 기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에게 김명순의 문학적 성취는 중요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시인 문정희(한국시인협회 회장)가 "김명순은 1세대 여성 문인으로 양과 질에서 단연코 누구보다 탁월했다"라고 평가하고, 그가 이육사나 한용운보다 앞서 항일 정신을 작품에 녹여냈다는 사실은 묻혀버렸다. 남성 문인들에게 필요했던 건 그저 짓밟기 좋은 '정조 없는 여자'라는 프레임이었을 뿐이다.


서정자 초당대학교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공격의 이면에는 김기진이 유미주의 예술관을 지닌 문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타깃으로 김명순을 택했다는 문단 내 권력 투쟁의 맥락도 있었다.


김명순은 남성 문인들의 끊임없는 괴롭힘 속에서 1927년 자살을 시도하면서도 시와 소설, 수필, 희곡을 통해 자신에 대한 오해를 벗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자전적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에서는 성폭행 피해의 아픔까지 용기 있게 고백했다. 그의 시 〈유언〉(1924)에 남긴 절규는 이런 것이었다.
"조선아…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이 분노 서린 한 줄이 남긴 여운은 씁쓸하다. 결국 김명순은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고, 1945년 해방 소식을 듣고도 돈이 없어 귀국하지 못했다.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 행려병자로 신고되어 도쿄 아오야마 뇌병원(靑山腦病院)에 수용된 채 1951년 55세로 숨졌다. 매장지는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키우던 양아들마저 어머니의 비극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월이 흘러 2024년. 국내1위 엔터사라는 거대 자본 권력 안에서 벌어진 풍경은, 물론 김명순의 비극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이 분쟁은 경영권 탈취 의혹, 주주간 계약 해석, 배임 혐의 등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고, 양측 모두 법적 주장과 반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분쟁이 전개되는 방식에서 100년 전의 그림자가 겹친다.


'경영권 탈취'라는 명분 뒤에 슬쩍 끼워 넣어진 것은 '무속'과 '비이성'이라는 익숙한 프레임이었다.


100년 전 김명순에게 들이댔던 '정조'라는 칼날이, 현대에는 '도덕적 결함'이나 '주술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변주되었을 뿐이다.


기득권이 대상을 공격할 때 검증된 무기를 재사용한다는 건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패턴이다.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 이것이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공격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명순과 달리 21세기의 한 여성은 정제된 보도자료 대신 기자회견이라는 판을 직접 깔았다. 날것의 언어로 권력의 모순을 정면에서 들이받는 방식을 택했다. 과거 신문과 잡지가 여론을 독점하던 시대에 김명순에게는 이런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SNS와 직접 소통이라는 우회로가 존재한다. 대중은 각본에 놀아나는 대신, 거친 저항 속에서 '실력'이라는 숫자가 뒷받침하는 가능성을 읽어냈다.


과거의 방정환들이 펜끝으로 한 여성의 삶을 난도질할 수 있었던 건, 서사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기진이, 김동인이, 방정환이 잡지와 신문이라는 매체를 쥐고 있는 한, 김명순은 반론조차 세상에 내놓기 어려웠다. 그러나 2024년의 거대 자본은 모든 것을 가지고도 한 개인의 입을 막지 못했다. 법원은 법원대로, 대중은 대중대로 각자의 판단을 내렸고, 프레임은 예정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발 물러나 짚어야 할 점이 있다. 김명순과 의 비교가 모든 면에서 등치되는 건 아니다. 김명순의 비극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라는 명백한 부당함의 문제였다.


다른 사안은 경영권과 자본, 계약이 얽힌 사안으로 아직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이다. 이 둘을 '본질이 같다'라고 단정하면 김명순의 비극이 현재 분쟁의 수사적 도구로 소비될 위험이 있고, 동시에 분쟁의 복잡성이 단순화된다.


그럼에도 비교의 핵심은 유효하다.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에게 사생활이나 비합리성 프레임을 씌워 본질을 흐리는 패턴. 이 패턴은 100년 전에도, 지금도 작동한다. 달라진 건 결말이다.


100년 전, 김명순은 골방에서 울며 서사를 끝내야 했다. 그의 천재성은 남성 문인들의 가십 뒤에 묻혔고, 타국의 정신병원 차가운 벽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하지만 21세기의 여성은 더 이상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다. 권력이 규정하는 서사를 거부하고 자신의 언어를 선택하는 순간, 견고해 보이던 프레임에 균열이 간다. 절망하지도, 쉽게 망하지도 않는 이 시대의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결말을 써 내려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끝의 주인공은 이제 바뀌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스러져간 김명순의 이름을 우리가 다시 부르는 것, 그것이 100년 뒤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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