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부장 김여정의 3월 — 직함이 바뀌어도 문법은 같다
매년 3월이면 어김없이 온다.
한미가 연합훈련을 시작하면 평양은 담화를 내놓는다. 훈련 이름이 바뀌고 정권이 교체돼도 이 패턴은 흔들리지 않는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달라진 건 딱 하나. 담화를 보낸 사람의 직함이다.
3월 9일부터 19일까지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가 진행됐다. 병력 1만8천여 명이 참가하는 연례 방어 훈련이다. 훈련 개시 8일 전인 3월 1일, 김여정은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 안으로 훈련이 강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불쾌하다고 했다. 그리고 3월 10일 두 번째 담화가 나왔다. "반드시 대가를 치를 자멸적 행동."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주한미군 철수도 다시 들고나왔다.
어조도 패턴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지난 2월 23일, 노동당 9차 대회에서 김여정은 장관급인 '부장'으로 승진했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내려앉은 지 꼭 5년 만이다.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5년 만에 재진입했다. 이후 2월 28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그를 '당중앙위원회 총무부장'으로 호칭하면서 구체적인 직책이 처음 공식 확인됐다.
총무부가 어떤 곳인지 알면 이 인사가 가볍지 않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총비서의 방침과 지시를 전 당 조직에 전파하고 집행 상황을 총괄 관리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당내 각종 문서의 실무적 관리도 여기서 맡는다고 전해진다. 김정은의 지시가 당 전체로 흘러가는 길목에 놓인 자리라는 뜻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장 직급은 김여정의 메시지에 무게를 더욱 실어주며, 앞으로 더 자신감 있는 담화를 발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정은의 입'이 이제 '김정은의 손'도 쥐었다. 같은 경고가 다른 무게로 온다.
이번 담화에서 진짜 읽어야 할 부분은 강한 말이 아니라 없는 말이다. 트럼프를 직접 겨냥한 표현이 없다. 미국을 향한 직접 비난도 빠졌다. 북한은 지금 한국과 한미 훈련에는 강하게 반응하면서도 북미 채널은 닫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미 2025년 7월 담화에서 선을 그은 바 있다.
"지금 2025년은 2018년이나 2019년이 아니다."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한 전혀 다른 방식의 접촉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 전제가 바뀌지 않는 한, 담화의 수위가 오르내려도 북한의 방향은 달라지지 않는다.
담화는 압박이다. 그리고 압박은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려는 계산에서 나온다. 평양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시간으로 재고 있다.
이번 훈련을 둘러싼 숫자 하나가 그 지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번 자유의 방패 야외기동훈련은 22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1건의 절반도 안 된다. 여단급 이상 대규모 훈련은 지난해 16회에서 6회로 줄었다. 한국 측이 미군에 추가 축소를 요구했다가 미군이 난색을 보이면서 협의가 지연됐고, 결국 22건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긴장 완화 기조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대화 의지가 맞물린 결정"이라고 짚었다.
한미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이 밖으로 드러났다. 동맹의 균열이라기보다 전략적 조율 과정이다. 그러나 그 갈등이 외부에 노출됐다는 것 자체가 신호다. 북한은 이미 이 지점을 보고 있다.
여기서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훈련 규모를 줄이는 것이 과연 대화를 만드는가.
북한이 문제 삼는 건 훈련의 규모가 아니라 훈련 자체의 존재다. 2021년에도 2026년에도 같은 말이 반복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동족을 겨냥한 합동군사연습 자체를 반대했지, 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규모를 줄여도 이 논리는 꿈쩍하지 않는다. 북한이 원하는 건 '작은 훈련'이 아니라 '없는 훈련'이다. 이 간극을 무시하고 축소를 대화 여건 조성으로 읽으면, 매년 더 줄여야 한다는 구조적 압박만 강화된다.
핵심은 '훈련의 유지'와 '접촉 채널의 분리'를 동시에 가져가는 이중 트랙 전략이다. 억지력 자산인 연합훈련을 협상 카드로 소모하지 않되, 대화 채널은 별도로 열어두는 방식이다.
미국이 이번 협의에서 추가 축소에 난색을 보인 것도 같은 논리다. 연합훈련을 북미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보존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이 작동하려면 전제가 하나 있다. 훈련의 목적과 의미를 우리 스스로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중 분산 배치가 실질 전투력을 지키면서 이뤄지는 조정인지, 아니면 담화 한 편에 반응한 형식적 후퇴인지를 스스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북한은 다음 담화의 효과를 이미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매년 3월이면 경고문이 온다.
'또 왔구나' 하고 넘기면 달라진 것을 놓친다. 담화를 내놓는 사람의 직함이 달라졌다. 그 직함이 갖는 당내 장악력이 달라졌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 방식이 다음 판의 조건을 지금 이 순간 만들고 있다.
평양은 우리를 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보여주느냐다.